[기초를 다지자] 18. 옷사이즈도 표준화 안돼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내 친구 姜모(38)씨는 지난달 집안행사 때 입을 정장을 사러 남편과 함께 백화점에 갔다. 姜씨는 66 사이즈, 남편은 699 사이즈였다.

국내 의류업계는 정장의 경우 옷 사이즈로 여자 것은 두자리, 남자 것은 세자리 숫자를 수십년간 써오고 있다. 우선 남편이 신사복 매장 서너 군데에서 옷을 입어봤다. 그런데 같은 699인데도 브랜드에 따라 크기가 달랐다. 어떤 것은 소매가 길었고 어떤 것은 품이 작았다.

여성복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같은 브랜드이고 사이즈가 모두 66인 데도 하나는 허리가 끼고, 또다른 하나는 기장이 맞지 않았다. 姜씨 부부는 지난 5년간 몸무게의 변동폭이 1㎏ 안팎이어서 체형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매장을 돌며 여러 차례 번거롭게 옷을 입어봐야 했다. 특히 남편은 주로 입어 오던 브랜드의 699 사이즈 정장을 사면서 소매와 허리 부분을 수선해야 했다.

국내 의류업체들이 내놓은 옷 사이즈가 들쭉날쭉하기 때문이다. 남성 와이셔츠는 정도가 더 심하다.

엄연히 목둘레와 소매 길이가 치수로 적혀 있는데 40 - 84 사이즈를 달라고 하면 어떤 매장에선 "우리 브랜드는 소매 길이가 다른 브랜드보다 길게 나오니 40-82면 맞을 거예요" 라고 한다.

또다른 매장에선 "우리 옷은 목둘레가 크니까 알고 계신 사이즈보다 작은 것을 고르세요" 라고 말한다.

선진국에선 이해하기 힘든 기초부실이다.

또 다른 친구의 남편은 유럽 출장을 자주 간다. 한국인치고는 체형이 큰 편인데 해외에서 정장을 고를 때 52 사이즈를 달라고 하면 한치도 틀림없는 정장을 가져다 준다고 했다.

이탈리아.프랑스.영국 등에선 자기 나라 국민에 맞는 옷 치수체계를 갖고 있고 치수와 실제 크기가 일치한다. 이에 비해 국내에는 정확한 체형 조사자료가 부족하다. 의류업체들은 재봉에 들어가면서 대충대충 옷을 만든다고 한다. 여성복의 경우 66 사이즈를 만들면서 기장이나 허리둘레 오차가 3~4㎝나 나는 것을 발견하고도 버젓이 66 사이즈를 붙여 내다 판다.

이유순 <삼성패션연구소 수석연구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