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만드는 데서 미적분 깨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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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한국항공우주산업(KAI) 허경환(오른쪽) 엔지니어가 22일 모형 비행기를 이용해 항공기 작동원리를 과학교사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KAI 제공]

22일 오후 4시40분 경남 사천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본사 인재개발센터. 책상마다 놓인 소형 선풍기가 돌아가자 모형 종이비행기들이 붕 떠올랐다. “기체가 빠르게 흐르면 압력이 낮아져서 떠오르는 힘이 생긴다는 베르누이의 원리를 항공기의 움직임을 통해 확인하는 실험입니다.”

KAI 엔지니어 허경환씨의 설명에 전국에서 온 과학중점고등학교 교사 40명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들은 KAI에서 개발한 교재와 실험도구로 수업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KAI는 국내에서 유일한 항공기 제작업체다. 최초의 국산 헬기 ‘수리온’과 초음속기 T-50 등을 개발했다. 군용기를 만드는 방위산업체가 왜 과학교사 교육에 나선 것일까.

KAI가 과학교사들의 연수 프로그램 개발을 시작한 것은 지난해 9월이다. 2007년 74억원이던 영업이익이 지난해 1100억원을 넘기면서다. 사회 환원 방법을 고민하던 중 ‘과학 교육’에 착안했다. 김홍경 사장은 “첨단 과학기술의 결정체인 항공기 개발·생산 현장은 수학·과학의 원리가 폭넓게 적용되는 살아 있는 학습 공간”이라고 말했다.

현장 엔지니어 20명이 3개월 동안 매달려 초·중·고 교과 과정 중 실제 항공기를 제작할 때 적용되는 원리 46가지를 찾아냈다. 비행기의 항로를 계산할 때 사인·코사인의 법칙 같은 삼각함수가 적용되고, 항공기 제어장치 설계에는 미적분이 동원된다는 식이다. 산업 현장이 교실이자 실험실이 된 셈이다. 엔지니어들이 만든 교재를 한국과학창의재단이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게 다듬었다. 어느 학년, 어떤 교과 과정과 관련 있는지도 교재에 표시했다. 교재에는 동영상 CD와 맞춤형 실험도구가 딸려 있다. 연수는 1박2일 과정. 올해 8월부터 3년간 2000명이 연수를 받을 예정이다.

산업 현장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기초과학 지식을 교육 현장에 적용한다는 KAI의 실험은 교육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날 연수에는 교육과학기술부 이주호 차관이 참석했다. 이 차관은 “입학사정관 제도에서는 창의력이 가장 중요하다”며 “창의적인 인재를 기르기 위해서는 기업 등 사회 전반이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KAI가 사회 환원 방법으로 ‘지식 나눔’을 선택한 것은 최근의 이공계 기피 현상 때문이다. 김 사장은 “학생들이 기초과학에 흥미를 갖게 되면 이공계 진학이 늘어날 것”이라며 “우수한 인재가 늘어나면 결국 기업에도 득이 된다”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산업계에서도 관심을 보였다. 교육과학강국실천연합은 KAI의 사례를 ▶공교육 활성화 ▶이공계 인재 양성 ▶기업의 기부 문화 정착을 조화시킨 새로운 롤모델로 보고 2012년까지 30개 기업으로 확산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사천=구희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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