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권 개선 위해 연 135만 달러 지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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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1999년 12월 서울 이화여대에서 처음으로 국제북한인권회의를 열었을 때 관심을 가져준 이는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그때 연설 제목을 ‘침묵을 깨며(Ending the silence)’로 잡은 건 완벽한 침묵만이 지배해온 북한인권 문제를 더 이상 회피해선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에서였죠. 그 뒤 10년간 노력한 결과 지금은 엄청나게 달라졌습니다.”

미국 의회의 지원을 받지만 독립된 비영리기구로 세계 각국의 민주화·인권개선을 지원해온 ‘미국민주주의재단(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NED)’의 칼 거시먼(67) 회장의 말이다. 그는 최근 서울에서 NED가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와 공동 주최한 ‘북한 개발·인권 및 민주주의 증진을 위한 국제협력’ 회의 참석차 방한했다가 본지와 인터뷰를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북한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은.

“원래는 중남미 국가들과 소련·폴란드 등의 민주화에 관심이 많았다. 1960년대 예일대를 졸업한 뒤 평화봉사단 일원으로 활동하다 83년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 대통령이 민주주의의 확대를 위해 설립한 NED에 참여하면서 자연스레 그쪽에 관심을 집중했다. 그러다 워싱턴 정가의 한반도통이었던 스티븐 솔라즈 전 하원의원이 90년대 초 NED 이사진에 합류하면서 ‘이젠 북한에 관심을 둘 때’라고 권유해 북한 인권에도 초점을 맞추게 됐다.”

-당시엔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북한이 워낙 생소한 폐쇄 국가라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96년 사무실에 날아든 한 권의 책자를 보고 ‘드디어 파트너를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 인권을 위한 시민연합’이란 이름 아래 뭉친 초창기 탈북자들과 인권운동가들의 모임이었다. 그 책자는 그들이 만든 북한인권 보고서였다. 이 보고서를 통해 북한의 참혹한 실상에 눈을 떴다. 3년 뒤인 99년 한국을 시작으로 일본·폴란드·체코·노르웨이 등에서 매년 북한 인권회의를 열어왔고 99년 2만5000달러로 시작한 NED의 북한 인권 지원금도 연간 135만 달러까지 늘렸다. 이 돈은 라디오 프리조선, 임진강 등 대북방송·매체 10여 개를 돕는 데 쓰인다.”

-그런 노력 덕분에 이젠 국제사회에서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인식이 자리를 잡은 것 같다.

“그렇다. 올 여름 열 번째로 캐나다에서 열릴 북한인권회의에는 전 세계에서 결성된 수십 개 북한인권 지원단체들이 참여할 예정이다. 미 의회도 지난해 미 국무부에 처음으로 북한인권 개선지원 예산 300만 달러를 배정했고, 올해엔 350만 달러까지 늘렸다.”

-북한 인권을 다루면서 인상 깊었던 일화는.

“6년전 비무장지대를 걸어서 월남해온 젊은 북한 병사가 ‘공화국(북한)은 10년 안에 붕괴할 것이라고 내 동료가 공공연히 말한다’고 전했던 순간이다. 그 병사는 지금 북한인권단체에서 헌신적으로 일한다. 이런 모습을 보면 북한 내에서도 얼마든지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기대할 수 있다.”

-북한의 인권이 개선되려면 정권교체 외엔 답이 없다는 주장이 있다.

“북한의 체제는 분명 바뀌어야하지만, 외부 세력에 의한 강제적 정권교체는 찬성하지 않는다. 변혁은 안에서 일어나야한다. 이는 다른 나라들의 민주화 과정에서 확인된 사실이다. 나는 NED 회장으로서 100개가 넘는 국가들의 인권 상황을 주시해야하는데, 북한은 그중 늘 최상위에 놓여있다.”

-북한은 미국이 인권개선을 촉구하면 ‘미제의 공화국 압살 책동’이라고 반발하는데.

“ 카스트로를 비롯한 수많은 독재국가 지도자로부터 그런 얘기를 들어왔다. 그러나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답게 대우받고 살기 원한다. 이를 지켜주는 것이 인권이고, 민주주의 아닌가. 이는 미국뿐 아니라 그 누구라도 힘써 지켜야하는 인류의 보편적이고 근본적인 가치다.”

글=강찬호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stoncold@joonag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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