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일본에서의 '오리엔탈리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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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중국은 역사적으로 주변국들과의 마찰 때문에 골치를 앓았다. 이들을 다스리는데 특별한 지혜가 필요했다. 군사력은 늘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택한 게 문화다. 중국은 문화의 전파와 이를 통한 지배라는 고차원 전략을 고안해 냈다.

문자의 보급은 문화지배, 즉 중화주의(中華主義)를 심는 데 가장 효과적인 무기였다.

한자(漢字)는 표의성이 강한 이미지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무의식상에 강한 흔적을 남김으로써 의식을 지배한다.

이를테면 중국은 자신들을 '하(夏)' 라고 부르는 데 반하여 주변 민족을 '이(夷)' 로 칭한다.

'하' 는 '廈' 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큰 집에 살고 있음' 을 뜻하고, '이' 는 '姨' 자에서 알 수 있듯이 '작은 집에 살고 있음' 을 뜻한다.

중국인들은 주거 공간을 대립시키고 그 비교 우위로써 중심과 주변을 구별지어서 주변국의 의식을 지배한 것이다.

주변국이 한자를 도입해서 사용할 경우 문자 시스템의 의도대로 그들은 열등한 위치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오리엔탈리즘적 인식 기제(機制)가 동아시아에서는 중국을 중심으로 작동되었다.

한편 현대 일본의 이른바 '일본문화론' 에도 이와 비슷한 시선이 배어 있다. 오리엔탈리즘이 서양의 허구적 정체성을 창출해 냈듯이 일본문화론은 '아시아의 예외' 라는 자기정체성을 구축해 왔기 때문이다.

오리엔탈리즘은 일본문화론의 필수불가결한 구성요소였다. 일본은 도쿠가와(德川)후기의 국학(國學)을 통해 중국으로부터의 탈피를 지향했다. 그 귀결점이 19세기말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탈아론(脫亞論)이다.

그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이라는 두 차례의 침략전쟁에 승리하면서 이탈의 대상은 서양으로 바뀌게 된다.

'일본적 오리엔탈리즘' , 즉 동양학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근대화' 에 성공한 일본이 현실의 지역 패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아시아의 과거를 재편성한 산물이었다.

일본은 동양학으로서 서양의 오리엔트를 일본의 동양으로 치환시켜 서양 오리엔탈리즘에 도전할 새로운 분류체계를 구축하려 했다.

김 근 <서강대 교수.중국문화>

임성모 <연세대 강사.일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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