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공적자금 낭비 막자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국정조사권을 가진 국회가 정부예산보다 많은 공적자금을 투입하고도 금융구조조정에 실패해 또다시 40조원 이상의 공적자금이 투입되고 있는 상황에서 조사권을 발동하지 않고 있었던 것은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국회가 공적자금 조사를 제대로 하고 후속조치를 철저히 했으면 1차 투입액 64조원으로도 금융구조조정과 금융정상화가 이뤄져 지금쯤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고, 결과적으로는 기업구조조정도 더불어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공적자금 투입 실패에 대한 국회의 책임도 크다.

만시지탄이지만 국정조사 활동에 앞서 국회 스스로 반성과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것이다.

국민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

우선 기투입한 1백9조6천억원에 대한 철저한 책임규명이 있어야 한다.

계획부터 집행완료까지 철저히 파헤쳐 잘못을 가려내야 한다.

많은 자금이 임시변통, 땜질, 이해관계, 도덕적 해이, 오판, 속임수 등으로 낭비됐을 수 있다.

자금만 투입되고 구조조정이 되지 않은 원인을 제대로 밝혀야 한다.

특히 공적자금을 받고도 구제금융을 자행한 금융기관에 대해 모든 의사결정 과정을 철저히 따져야 한다.

여기에는 불순한 의도와 부정부패의 소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잘못을 저지른 모든 책임자를 색출해 그 책임을 엄격히 물어야 한다.

잘못에 대한 책임추궁이 없으면 잘못은 되풀이되게 마련이다.

현정부의 가장 큰 실패가 사람을 잘못 배치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번 기회에 이를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잘못하는 사람들이 잘못을 되풀이했기 때문에 공적자금이 계속 투입되는데도 금융이 악화하고 금융기관이 부실해지는 것이다.

사람을 갈지 않고는 공적자금 투입의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근거를 밝혀야 한다.

기투입분에 대한 철저한 규명을 거울삼아 앞으로 투입될 공적자금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정당성 및 책임소재를 분명히 해야 한다.

거시경제정책 기조부터 개별 기업에 대한 금융 문제까지 모든 경제정책과 의사결정 및 투입과정을 충분한 시간을 갖고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부실기업을 구제하는 공적자금 낭비를 막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팽창과욕에 집착하는 거시경제정책부터 조정하게 해야 한다.

워크아웃.법정관리.화의 등 편법구제로 인한 금융부실에 통제가 가해지지 않고는 공적자금의 부실투입을 막을 수 없다.

이에 대한 국회의 단호한 역할이 있어야 한다.

하나의 방법으로 공적자금 투입에 대한 전제조건을 제시하고 그 조건에 맞지 않는 경우에는 공적자금을 투입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조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을 가는 것이다.

금융에 관한 한 철두철미하게 원칙을 준수하는 사람이 적소에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모습으로 보아 이것은 국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금융실패를 바로 잡는 데 있어 핵심과제다.

공적자금에 대한 국회의 감시.감독이 지속돼야 한다. 정권은 유한하나 경제는 영원하다. 정부는 문제를 단기적 안목으로 무마하고 덮어 넘기려는 임시변통의 속성을 갖고 있다.

국회는 일과성의 특별활동에 그칠 것이 아니라 상시 활동을 정례화해 직간접으로 관련되는 공적자금 투입 전과정을 철저히 감시.감독하는 체제를 갖춰야 한다.

그동안 공적자금 투입에 대한 충고와 경고가 많았음에도 투입의 실패는 계속됐다.

언론도 여론도 효과를 거두지 못한 이 과제를 국회에서 심각하게 다루지 않으면 안된다.

작금의 갈팡질팡하는 기업정리 정책, 부실기업에 대한 일관성 없는 구제금융조치, 금융기관에 대한 정책상실 등이 되풀이되면서 금융시장이 마비되는 현상은 심각하다.

정부만의 힘으로 신뢰를 회복하기에는 시기를 놓치기도 했고 역부족이기도 하다.

국민을 위함과 동시에 정부를 위해서도 국회 국정감사 차원의 공적자금 국정조사는 강화돼야 한다.

부실기업에 금융기관이 물리고 그 결과로 부실해지는 금융기관에 정부가 물려 공적자금이 꼬리를 물고 투입되는 악순환이다.

이 꼬리를 끊기 위해서도 국회가 기능을 발휘해 전환의 계기를 마련해야 할 때다.

국회가 국민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역할 중의 하나라는 사명과 책임으로 공적자금 국정조사를 제대로 해야 할 것이다.

郭相瓊 고려대 국제대학원장.경제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