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PION 일기] 가나학생들에 민속놀이도 '전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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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가나의 쿠마시에 있는 도시종합교육센터(CEC)에서 다섯달째 컴퓨터를 가르치고 있다. CEC는 NGO라기보다 학교에 가깝다.

학생은 유치원.초등반.중등반.직업반에 소속된 6살부터 20대까지의 3백명. 컴퓨터라야 원조받은 386급 20여대에 불과하지만 다양한 연령층이어서 수업마다 새로운 경험을 한다.

처음엔 컴퓨터가 생소하던 학생들이 지금은 키보드 두드리는 손놀림도 빨라졌고 직업반 학생들은 '엑셀' 프로그램도 곧잘 운용한다.

미국과 독일의 자원봉사자들이 한 달 전 돌아가고 혼자 남았다. 설날이 다가오는데 이곳 학생들에게 윷놀이.팽이치기도 가르쳐 함께 즐긴다.

닭싸움과 발야구도 하고 태권도도 가르친다. 한국의 문화를 선보이는 것이다. 다행히 학생들은 나를 잘 따른다.

한달쯤 지나 오렌지를 담은 검은 비닐봉지를 갖다주는 학생들이 생기더니 지금은 그 수가 많이 늘었다. 안받겠다고 하지만 그들은 살짝 놓고 달아난다.

종종 다른 선생님의 수업에 참여한다. 염색시간에는 40여명의 학생들과 형형색색의 물감을 들이며 아프리카의 강렬한 색깔을 느껴보기도 했다. 틈틈이 학교 건물 공사장에서 벽돌을 쌓고 페인트칠도 한다.

1월 초, 선교사 한 분을 만나려 북쪽으로 9백㎞ 떨어진 볼카탕카라를 찾았다. 저녁 다섯시에 출발해 9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다시 반나절을 걸었다.

선교사는 프라프라족의 현지어를 배워 현지인처럼 생활하고 있었다. 오지에서의 그의 삶은 봉사자로서의 나의 의무를 다시금 되새기게 했다.

요즘엔 말라리아 환자들이 자주 생긴다. 4~5시간씩 기다려야 하는 국립병원이나 비싼 개인병원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환자들은 결국 검은 피부에 땀방울이 맺히며 죽어간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기란 정말 힘들다.

며칠 전에는 친한 학생인 아이샤의 오빠 장례식에 갔다. 그는 에이즈로 죽었다. 주민들은 검은 옷을 입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술을 마시며 밤을 밝혔다.

슬픔을 달래느라 흥겨운 음악에 맞춰 춤을 추지만 그 음악이 슬픔을 더 깊게 했다. 아이러니였다. 더웠고 무서웠지만 새로운 경험이었다.

며칠 있으면 한국으로 돌아간다. 요즘엔 정들었던 사람들을 찾아 작별인사를 하고 다닌다. 그들은 내 손을 꼭 잡고 언제 다시오느냐며 서운해 한다.

황막한 밤 길을 터벅터벅 걸어오면서 나는 아프리카에서의 고생이 아무나 겪을 수 없는 젊은 날의 행복이었음을 느낀다.

임재현(任哉炫.24.국제 NGO 인턴/봉사단 2기.가나 쿠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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