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정치적 해석 말랬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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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가 옛 안기부 총선자금 지원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를 비난한 16일 대검 신승남(愼承男)차장이 이례적으로 기자간담회를 요청했다.

18일로 예정된 정례 간담회를 이틀 앞당긴 것이다.

이 자리에서 愼차장은 안기부 자금을 지원받은 정치인들을 소환조사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또 정치인들이 받은 돈을 국고로 환수하는 것은 법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설명도 했다.

대검 관계자는 기자간담회를 하게 된 배경을 "정치인 소환조사 여부를 놓고 언론마다 조금씩 다른 내용이 보도돼 검찰의 입장을 정리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 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의 말처럼 실제로 그동안 정치인 소환조사 여부부터 방법에 이르기까지 각기 다른 방향의 기사가 신문지면과 방송화면을 덮었었다.

'정치인들 횡령죄나 장물죄로 처벌 검토' '정치인 서면조사 방침' '정치인 선별조사' '비공개 소환이나 제3의 장소에서 조사' 등.

이 기사들은 검찰이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기자들이 상상력을 발휘해 마구 쓴 것도 아니었다.

대부분이 익명을 요구한 수사 실무진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사실 정치인 사법처리 여부는 안기부 예산을 신한국당 지원에 사용하는 데 관여한 사람들을 밝혀내는 것과 함께 이번 사건의 핵심이었다.

당초 수사팀이 정치인들에 대해 횡령죄나 장물취득죄 적용을 검토하겠다고 말했을 때 검찰 내부에서조차 "수사팀이 이 사건을 너무 크게 몰고 가는 것 아니냐" 는 비판도 많았었다.

결국 정치인 처리는 그동안 수사팀이 말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이같은 방침 변경이 수사 실무자들의 의견 때문인지, 아니면 검찰 수뇌부 판단 때문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실무진의 합리적 견해가 수뇌부에 의해 묵살되는 것도 문제지만 이번 일이 실무진의 무리수를 수뇌부가 제지한 것이라면 또다른 문제다.

검찰이 "제발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말아달라" 고 말하는 것도 어색한 대목이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일수록 검찰이 중심을 잡고 사건의 실체 파악에 전념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지적에 귀가 솔깃해지기 때문이다.

박재현 기자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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