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사 시험 공정성 시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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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방폭전기설비.이동보행기에 대해 논하라' '조광용 안정기의 구성 및 동작원리를 쓰시오' .

산업인력관리공단이 1999년 7월 실시한 제58회 건축전기설비 기술사 시험에 나온 주관식 문항들이다.

10여권의 관련 서적 중 그해 5월 A대학 B교수가 펴낸 책에서만 소개된 내용이다.

당시 B교수는 두명의 시험 출제위원 중 한 사람. 그 시험에서 B교수의 책을 교재로 쓴 C전기전문학원은 10명의 최종 합격자 중 7명을 배출했다.

경쟁학원과 불합격 수험생들의 항의가 나오자 공단측은 B교수를 이후 출제자 후보명단에서 빼고, 당시 공단 출제팀장을 지방사무소로 인사조치했다.

그러나 그후 지난해 9월(제62회)까지 치른 네차례의 시험에서 많게는 5개 이상(전체 20여문항)이 또 B교수의 책에서 출제된 것으로 최근 공단에 의해 밝혀졌다.

그 사이 C학원이 배출한 이 종목 기술사는 모두 31명. 전체 합격자(47명)의 65%다.

◇ 불공정 출제 시비〓이런 내용이 알려지면서 출제 과정의 불공정 시비가 일고 있다.

E기술사학원 鄭모(49)원장은 13일 "다른 학원은 건축전기설비 분야에서 2년간 합격자를 거의 못냈다" 며 "시험 관리가 인맥이나 로비에 좌우되고 있다" 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C학원측은 "우수한 교육내용에 따라 학습한 수험생들이 좋은 성과를 낸 것" 이라며 "99년에도 B교수가 출제위원이었는지는 몰랐다" 고 말했다. B교수도 "최신 기술이 출제에 반영됐을 뿐 다른 이유는 없다" 고 밝혔다.

◇ 허술한 시험관리〓공단은 기술사 시험만 97종, 기능사.기사 등을 포함할 경우 7백여종의 국가자격시험을 모두 관리한다.

그러나 기술사 시험의 경우 1주일 전 출제위원을 선정해 하루 전 합숙을 하며 출제를 하고 있어 졸속이라는 지적도 받고 있다. 출제위원 후보가 분야마다 10여명에 불과하고 출제자가 채점까지 하는 경우도 잦다고 한다.

공단측은 그러나 "출제가 공정하게 진행되고 있다" 며 "지난해부터 20개 기술사 종목 출제위원수를 세명으로 늘리고 산업계 실무 전문가들의 비중을 높였다" 고 밝혔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고상원(高祥原)박사는 "불필요하게 세분화된 종목을 통합해 분야별로 나뉘어 있는 출제위원 후보와 위원 숫자를 늘릴 필요가 있다" 며 "기능사.기사시험은 지방자치단체에 위임해 공단은 기술사 시험관리에만 집중하는 체제도 검토돼야 한다" 고 지적했다.

◇ 기술사〓기술사법에 따라 관리되는 기술 관련 최고자격. 주요 공사 수주시 자격요건이 되며, 일정 규모 이상 공사는 설계에서 감리까지 기술사의 자문과 기술지도가 의무화돼 있다. 이중 건축전기설비 기술사는 건축물의 배선.조명 등 전기설비 분야의 최고자격이다.

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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