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명 졸업생 모두가 주인공이었던 ‘우즈 미들스쿨’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3년 전 미국 버클리대학에서 연수할 때다. 그곳에서 1년간 공립 중학교(Will C. Woods Middle school)를 다녔던 딸아이가 졸업식을 하게 됐다. 졸업식은 인근에 있는 고교의 강당을 빌려서 했다. 가족들까지 왔기 때문에 넓은 공간이 필요해서다. 학생 한 명당 가족 동반 티켓을 4장씩 나눠줬다. 드레스와 정장 차림으로 한껏 멋을 낸 아이들이 입장하는 것으로 졸업식은 시작됐다. 아이들을 가르쳤던 선생님들이 차례로 나와 축사를 했다. 길지 않은 스피치였지만 선생님들의 말 속에서 아이들과 같이 울고 웃었던 3년을 떠올릴 수 있었다. 연설 도중 울먹이는 선생님도 있었다. “열심히 노력해서 중학교를 마치고 고교에 가게 된 너희들이 정말 자랑스럽다”고 한 교장 선생님도 “이 학교를 떠나지만 앞으로도 자랑스러운 우즈 미들스쿨 출신이란 걸 잊지 말아달라”고 당부한 대목에선 끝내 목이 메었다.

이번엔 졸업생들 차례였다. 6명의 학생이 스피치를 했다. ‘연설을 하고 싶다’고 미리 신청한 학생들에게 기회를 줬다고 한다. 학생회장이 대표로 하는 틀에 박힌 답사가 아니었다. 2, 3분가량의 짤막한 연설이었지만 좌중의 아이들은 폭소를 터뜨리기도 하고 박수로 화답하기도 했다. 1년 전 불의의 사고를 당해 죽은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이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해 너무 가슴 아프다”고 하자 분위기가 금세 숙연해졌다. 여기저기서 훌쩍대는 소리도 들렸다. 강당 안에서 그들은 졸업의 기쁨과 이별의 아쉬움을 느끼며 하나가 됐다.

이어 200명가량 되는 졸업생의 이름이 한 사람씩 호명됐다. 아이들은 한 명씩 단상 위로 올라가 교장 선생님이 주는 졸업장을 받아들었다. 선생님들은 일렬로 나란히 서서 떠나는 학생들을 일일이 포옹해줬다. 이어 졸업생들과 선생님들은 하나가 돼 교가를 합창했다. 이날 졸업식은 온전히 ‘아이들만의 것’이 됐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것도, 형식적으로 때우고 치우는 게 아니라 그들만의 온전한 축제였다. 졸업식의 주인공은 아이들이었다. 그들에게 맞게, 그들을 위해 행사의 형식과 내용이 꾸며졌다는 거다.

요즘 졸업식이 한창이다. 기자가 중학교를 졸업한 건 30년 전이다. 하지만 지금이나 그때나 우리의 졸업식 모습은 별반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교육감·국회의원·구청장·동창회장·학부모회장…가슴에 꽃을 달고 자신이 주인공인 양 단상 위에 자리 잡고 앉아있던 외빈의 모습은 지금도 판박이처럼 되풀이되고 있다. 정작 주인공인 졸업생들의 ‘존재감’은 느끼기 힘들다.

식장 한쪽을 채운 ‘동원된’ 재학생들과 지루하게 이어지는 외빈들의 축사,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소음의 기억이 얼마 전 갔던 한 졸업식에서 오버랩됐었다. 이런 소란 속에 졸업생들은 졸업식이 자신들을 위한 행사라고, 자신들이 주인공이라고 느꼈을까. 그런 속에서 졸업의 의미를 되새기고, 지나온 생활을 되돌아보고, 새 출발의 각오를 다질 수 있을까.

최근 중학생들이 졸업식 뒤 알몸 뒤풀이를 벌인 장면이 동영상에 유포되면서 사회문제화되고 있다. 선배들의 강압에 의해 이뤄진 것인지, 아닌지를 가리기 위한 경찰 수사도 이뤄지고 있다. 이들의 일탈행위를 한마디로 재단하긴 힘들다. 행위 자체가 복합적이고 다면적이기 때문이다. 강압에 의해서건 아니건, 일탈의 이면엔 억눌린 자아를 발산하고 싶은, 젊은 혈기의 욕구가 작용한 건 틀림없다.

때론 형식이 내용을 규정하기도 한다. 좋은 그릇에 담긴 음식이 훨씬 먹고 싶어지는 이치다.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하게 정돈된 방에선 스스로 몸가짐을 조심하게 되는 게 사람이다. 이런 형식의 중요함 때문에 우리는 특별히 기리고 가다듬고 축하해야 하는 일엔 이런 저런 이름을 붙여 매년 같은 날 행사를 연다. 형식이 중요하지 않다면 결혼식·졸업식 같은 행사를 구태여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졸업식의 주인공은 말할 것도 없이 졸업생이다. 그렇다면 행사의 형식이나 격식도 그들이 주인공으로 대접받도록, 그들이 중심이 돼 짜여야 한다. 졸업식을 아예 아이들이 스스로 원하는 형식으로 꾸미도록 하는 건 어떨까. 졸업생이 중심이 돼 준비팀을 만들고 아이디어를 모으고 초청장을 내고 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졸업의 의미를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졸업식이 진정한 그들의 축제로, 졸업의 의미를 새기는 즐거운 행사가 된다면 알몸 뒤풀이로 달려가려는 유혹을 떨쳐 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정치 에디터

중앙SUNDAY 구독신청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