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수송… '나홀로 항공화물'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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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지난해 12월 24일 오전 김포공항 국제선 청사.

40대 중반 여자가 일본행 여객기 수하물 데스크에서 짐 싣는 수속을 마쳤다. 대형 박스 23개로 3백㎏이 넘는 분량이다.

규정대로라면 1백20만원 이상의 초과료(20㎏ 초과시 ㎏당 4천1백원)를 내야 했지만 돈은 내지 않았다. 담당 직원이 초과 화물을 다른 승객 9명의 이름으로 나눠 컴퓨터에 기록하는 편법을 써줬기 때문이다.

확인 결과 이 여자는 화물운송업체가 고객에게 의뢰받은 짐을 여객기를 통해 날라주고 한번에 20만~30만원의 수고비를 받는 전문 운반꾼인 것으로 드러났다.

운송업체 관계자는 "이런 운반꾼들이 김포공항에만 2백~3백명 된다" 며 "한명이 주 2~3회 물건을 나른다" 고 말했다.

일부 화물 운송업체들이 고객이 맡긴 짐을 화물전용기 대신 운반꾼을 통해 여객기로 실어나르는 일이 공공연하게 국제선 청사에서 벌어지고 있다.

비행 안전을 이유로 내용 불명의 '무주(無主)화물' 을 못 싣게 한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규정이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 범죄 이용 가능성〓무주화물의 가장 큰 문제로 위험성이 지적된다. 김포공항 보안관계자는 "1988년 영국에서 발생한 팬암기 폭발사고처럼 화물 속에 폭발물을 넣어 공중 폭파시키는 테러 가능성 때문에 승객이 짐만 부치고 탑승하지 않으면 짐을 내려놓은 뒤 이륙하도록 규정돼 있다" 고 말했다.

그는 "사례를 적발해 항공사에 몇번 경고했지만 시정되지 않고 있다" 며 곧 개항될 인천국제공항에서도 이런 사례가 계속되면 우리나라가 불법 화물 경유지로 낙인찍힐 수 있다" 고 우려했다.

다른 관계자는 "이런 방식이 마약 등의 밀수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 고 문제를 제기했다.

◇ 운임절감 위해 편법통로 개발〓무주화물 성행 이유는 화물기로 짐을 부칠 때보다 운송료가 훨씬 싸기 때문. 가령 3㎏짜리 박스 한개의 운반비는 정식 탁송업체를 통해 화물기로 부칠 경우 10만~15만원선이지만 여객기 대리 운송을 하면 4만~5만원이다.

취재팀이 라면상자 한개분의 짐을 운송업체에 의뢰한 결과 5만원의 비용으로 여객기편으로 바로 다음날 일본에 배달됐다.

이같은 일이 가능한 것은 운송업체와 항공사 직원 등 사이에 '협력' 관계가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항공사측은 "운송업체와 협약을 맺어 단체티겟을 사는 조건으로 티켓수에 따라 짐을 배분해 싣고 있다" 고 밝히고 보안당국의 경고에 대해선 "알지 못한다" 고 말했다.

전진배.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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