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안기부 비자금, 수사 여부 촉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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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옛 안기부(현 국가정보원)가 15대 총선 때 여당이었던 신한국당 일부 후보에게 선거자금을 지원했다는 의혹이 약 8개월에 걸친 검찰의 계좌추적으로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경부고속철 차량선정을 둘러싼 금품로비를 수사하던 중 발견된 이상한 자금이 마침내 당시 안기부에서 나온 자금으로 밝혀진 것이다.

이제 남은 의혹은 문제의 자금이 안기부의 공식 자금인지와 자금지원을 지시한 사람이 누구인가 정도다.

대검 관계자는 "이틀 정도면 계좌추적 작업을 마칠 수 있을 것" 이라며 "도주 우려가 있는 사람부터 차례로 소환할 방침" 이라고 말했다.

검찰의 첫 소환대상자는 권영해(權寧海) 당시 안기부장과 김기섭(金己燮) 당시 운영차장 등 안기부 수뇌부가 될 것이 확실하다.

검찰은 이들을 상대로 후보들에게 준 돈의 출처와 자금지원 결정이 어느 선에서 내려왔는지를 집중 추궁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자금지원 지시가 청와대에서 내려온 것으로 밝혀질 경우 청와대에서 총선을 담당한 당시 정무수석비서관 등도 검찰조사를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또 안기부 자금을 받은 것으로 확인된 황명수(黃明秀) 선대위 부의장 등 당시 신한국당 후보들도 차례로 소환조사를 받게 될 전망이다.

검찰은 黃씨의 경우 특가법상 뇌물죄(공소시효 7년) 등으로 權전부장 등 안기부 간부들은 현행 국정원법(공소시효 5년)으로 처벌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정원법은 국정원 직원이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자금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날 경우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현재 이 사건 수사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부분은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까지 수사의 칼날이 미칠지 여부다.

대통령 직속기관인 안기부가 총선 때 1천억원 이상을 여당후보들에게 지원했다면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거나 최소한 보고는 됐을 것이라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정치권의 반응은 고려대상이 아니다" 며 원론적이고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金전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법률적 측면보다 정치적 상황이 변수로 작용할 것이란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총선 때 자금을 지원받은 정치인들에 대해서도 법조계 일각에서는 "정치인들이 안기부의 공금인 줄 알았다면 공금횡령의 공범으로 처벌할 수는 있을 것" 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검찰이 1998년 '정치자금법이 개정된 97년 11월 14일 이전의 정치자금 수수행위는 처벌하지 않겠다' 고 밝힌 점 때문에 수사의 형평성 시비가 제기될 소지가 크다.

박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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