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네임리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한 겨울에 찾아온 독특한 공포영화다. 영국 작가 램시 캠벨의 동명 소설을 스페인 감독 자우메 발라게로가 섬뜩한 영상으로 재현했다. 그렇지 않아도 추운 겨울을 한껏 쌀쌀하게 만든다.

반면 우리에겐 다소 낯선 느낌도 준다. 서양 기독교 문명의 특색 가운데 하나인 악의 문제를 탐구하고 있기 때문.

아무리 사악한 인간이라도 과연 이 영화 속 인물과 같은 발상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남긴다. 그만큼 같은 공포영화라 해도 문명권에 따라 이해하는 정도가 다른 것이다.

영화는 서양사회에선 비교적 익숙한 소재인 비밀 종교집단을 소재로 한다. 제목의 '네임리스' 가 바로 그런 세력이다.

일상생활에선 드러나지 않지만 그들만의 강력한 네트워크로 세계의 전복, 혹은 세상의 정화를 노리는 무리들이다. 일종의 악마집단인 그들은 극도의 신체적 고통을 통해 성인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영화는 한 여자 아기가 우물가에서 시체로 발견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온 몸이 황산으로 부식되고 또 전신에 바늘이 꽂힌 참혹한 형상이다.

그리고 5년 후 "엄마, 나야, 나 좀 데려가 줘" 라는 정체 불명의 전화가 죽은 줄로 알고 있던 딸로부터 어머니에게 걸려오면서 이야기가 급박하게 돌아간다.

딸을 한 순간도 잊지 못하던 어머니는 5년 전 딸의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를 찾아가고, 여기에 심령잡지의 젊은 기자가 가세하면서 미궁의 사건을 풀어간다.

호러답게 이후 살인이 잇따르고 영화의 미스터리는 고조된다. 감옥에 수감 중인 이 집단의 창시자가 사건을 해결하는 단서를 제공하는 형식이 '양들의 침묵' 과 유사하나 긴장도는 그에 미치지 못한다.

황당한 끝맺음도 완성도를 반감시킨다. 지난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작. 6일 개봉.

박정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