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미드’보다 재미있는 TED 콘퍼런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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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콘퍼런스에 올해 다섯 번째로 참석했다는 미국의 한 최고경영자(CEO)는 “나흘간의 콘퍼런스가 끝나고 나면 지적 피로에 녹초가 되지만 남는 것이 많아 매년 다시 온다”고 말했다. 쉬는 시간엔 돈 많은 후원자와 후원자를 찾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지닌 이들의 만남이 자연스레 이뤄진다.

거대 담론보다는 세상을 바꾸는 간단한 아이디어를 우대한다는 것도 일반적인 회의와는 다른 점이다. “감기에 걸렸을 때 악수 대신 어깨 인사를 하겠다는 배지를 부착하자” “우선 멈춤 표지판을 ‘순서대로 진입하시오’라는 표지로만 바꿔도 교통사고를 줄일 수 있다” 같은 일반 참석자들이 발표한 소소한 아이디어들도 무대에 올랐다.

이런 점 때문에 TED는 해마다 폭발적인 성공을 거둬 왔다. 6000달러(700여만원)를 내고 주최 측의 심사를 통과해 참석한 1500여 명의 참석자가 미국 경제를 이끄는 위치에 있다 보니 AT&T·구찌·렉서스·GE 같은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조찬·오찬을 내는 등 스폰서를 자처한다. 구글은 홍보를 위해 신제품 스마트폰 ‘넥서스원’을 콘퍼런스 참석자 전원에게 공짜로 나눠줬다. ‘미드(미국 드라마)’ 폐인에 비견되는 일명 ‘TED 폐인’들도 양산된다. 이번 롱비치 회의를 인터넷 생중계로 보기 위해 아프리카·포르투갈·일본·호주·영국 등 75개국 수천명이 밤잠을 설쳤다. 발표된 내용에 대한 논쟁은 트위터와 블로그에서도 이뤄진다.

콘퍼런스에 참석한 미국 독립영화제 선댄스페스티벌의 존 쿠퍼 총괄 디렉터는 “웃음 뒤에 심각함, 심각함 뒤에 감동을 적절하게 배치한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콘퍼런스”라고 평가했다. 저명 인사가 나오지만 다른 곳에서 한 얘기를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회의, 재미와 감동보다는 당위적인 메시지만 추구하는 회의에 익숙한 기자에게도 이번 TED의 여운은 오래갈 듯하다.

롱비치(미국)에서 최지영 경제부문 기자

◆TED 콘퍼런스=TED는 Technology(기술), Entertainment(엔터테인먼트), Design(디자인)의 약자. 전 세계 지식인이 모여 창조적·지적 아이디어에 대해 토론하고 교감하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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