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 똥은 똥그랗다 … ‘주름진 어린이’의 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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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2007년 미당문학상 수상자인 문인수(65) 시인은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 꼬불꼬불한 주름 사이사이에 영락없는 개구쟁이 하나가 들어앉아서다. 그런 시인이 첫 동시집 『염소 똥은 똥그랗다』(문학동네)를 펴냈다. 역시나 숨어있던 개구쟁이에게 펜을 내준 모양이다.

‘살 빠졌다, 쪘다, 근심 많은 달//묵묵히 입 다물고 하늘운동장을 도는 달//뚱뚱한 달 엉덩이 따라 걷는 엄마도 지금 뒤뚱뒤뚱, 뒤뚱뒤뚱 발걸음이 무겁지요.’(‘달과 엄마’)

‘개나리 가지는 언덕에 한 줄 두 줄 여러 줄 조별로 나온 아이들/가지마다 방울방울 노란 오줌 줄기,/감기약 먹었나 방울방울 노란 오줌 줄기,’(‘개나리 오줌’ 부분)

차고 기우는 달은 다이어트가 평생의 목표인 엄마를 닮았고, 노란 개나리 꽃은 감기약 먹어 샛노래진 오줌방울이란다. 표제작 ‘염소 똥은 똥그랗다’엔 제목부터 장난기가 발동된다. ‘동그랗다’가 아니라 ‘똥그랗다’지 않는가.

‘염소가 맴맴 풀밭을 돈다//말뚝에 대고 그려 내는 똥그란 밥상,/풀 뜯다 말고 또 먼 산 보는 똥그란 눈,/똥그랗게 지는 해,//오늘 하루도 맴맴 먹고 똥글똥글,/똥글똥글 염소 똥.’

말뚝에 묶인 염소가 목줄 길이 반지름만큼 원을 그리며 ‘똥’그랗게 풀을 뜯어먹는다. 그래서 ‘똥’그란 밥상이다.

‘수평선 멀리 두근두근/작고 예쁘게 바라보이던 섬,//섬에 도착하니 어!/그 섬 없어져버렸다’(‘섬’ 전문)

대중교통 무임승차가 가능한 노시인이지만 시선만은 미취학아동 못지 않게 상큼하다.

‘골목마다 올망졸망 정겨운 집,/집집마다 감나무 감 마을//가지마다 올망졸망 탐스런 감,/감나무도 나무마다 감 마을.’(‘감 마을, 감나무도 감 마을’ 전문)

이제는 찾아보기 어려운 고향 풍경이다. 이렇듯 유년의 향수를 자극하는 어른용 동시요,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구수한 옛날 이야기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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