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에 막힌 남북 장관급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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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평양 장관급회담이 북측의 전력제공 요청을 둘러싼 입장차로 벽에 부닥쳤다.

지난 14일 전체회의에서 '2백만㎾ 제공' 을 요청했던 북한은 이날 밤 박재규(朴在圭)수석대표와 전금진(全今振)단장간 단독접촉에서 "우선 50만㎾라도 달라" 며 배수진을 친 때문이다.

◇ 양측 입장차=북한은 15일 오후에도 "전력지원 없이는 이산가족 추가상봉이나 남북관계 일정 논의에 응할 수 없다" 며 버텨 회담 결렬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朴수석을 비롯한 남측 대표단은 "전력제공 문제는 차관급 경협추진위를 구성해 논의하자" 며 설득했다.

당초 오후 3시쯤 서울로 돌아오려던 남측 대표단은 이번엔 북측의 주특기인 '벼랑끝 전술' 까지 동원한 것.

귀환 예정시간에 맞춰 서울에 항공기 운항을 요청하고, "합의가 되든 안되든 돌아가겠다" 며 호텔에서 짐을 꾸리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나 북측은 전력지원 원칙에 먼저 합의하고 실무절차는 나중에 경협추진위에서 논의하자며 완강한 입장.

◇ 왜 전력지원 매달리나=그동안 국제기구 지원 등에 힘입어 급한 불을 끈 식량난과 달리 전력난은 여전하다.

식량.에너지(전력).외화난 등 이른바 북한의 '3난(難)' 중 가장 심각한 게 전력난. 통일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북한의 총 발전설비용량은 7백39만㎾. 그러나 이 중 폐기설비가 1백9만㎾, 보수가 필요한 설비가 4백30만㎾라 실제 발전설비 용량은 2백만㎾에 불과하다.

또 총발전량은 1백70억kwh지만 낡은 송.배전시설 때문에 손실률이 30%에 달해 실제 소비량은 인천광역시(1백16억kwh)와 비슷한 수준(1백14억kwh).

이 때문에 간판급 산업시설인 김책(金策)제철소의 용광로 가동이 중단되는 등 공장 4개 중 한 개 꼴만 가동되는 실정이다. 가정에는 백열등 한 개 분량의 전력만 공급된다.

◇ 곤혹스런 정부=무엇보다 '또 주기만 하느냐' 는 국민여론이 부담스럽다. 50만t의 식량수송이 끝나기도 전에 전력지원을 해 주기는 어렵다는 것. 그동안 여러가지 대북 전력지원 방안을 검토해 왔지만 지금은 시기가 아니라는 얘기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50만㎾ 송전에는 3천3억원이 들고 같은 용량의 중유(重油)발전소를 지어주려면 6천억원이 든다.

정부 당국자는 "송.배전망 차이와 시설노후 등 기술적 장벽도 간단치 않다" 고 말했다.

◇ 노동신문 특집=신문 1개면의 70%를 차지한 특집에서 북한은 남북 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 이산가족 상봉 등은 긍정 평가한 반면 나머지 대부분은 '남조선 우익 보수세력' 에 대한 가시돋친 비판이 주류.

특히 "남조선 보수우익의 한 우두머리 정객은 평양 상봉장면 텔레비전을 꺼 버렸다고 하니 속이 얼마나 뒤틀렸으면…" 이라며 특정인을 암시적으로 겨냥하기도.

'전력 2백만㎾ 요구' 와 관련, 기사는 "광복 직후 전기 송전으로부터 남조선 재해 때마다 흰쌀.천.의약품.시멘트 등을 보내줬다" 며 "우리는 낯(생색)을 내거나 '투명성' 을 요구한 적도 없었다" 고 주장.

'낮은 단계 연방제' 에 대해서는 "북남 두 개의 정부가 정치.군사.외교권을 그대로 갖는 방식인데 이를 자유민주주의 체제 양보라고 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 아니면 생 억지" 라고 언급.

기사는 "대결의 과거로 되돌아가면 회복할 길이 없으며 대결은 전쟁이고 전쟁은 무자비하다" 는 강경 어조로 마무리.

최훈.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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