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업들 구조조정 가속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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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소비지출이 급격히 감소하고 경기둔화세가 뚜렷해지면서 미국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가속화하고 있다.

나스닥의 거품이 빠지면서 정보기술(IT)업계에서 시작한 이같은 구조조정 바람은 제조업계를 거쳐 금융권 등 전 업종으로 확산하고 있다.

◇ 잇따르는 고강도 구조조정〓세계 최대의 자동차 업체인 제너럴 모터스(GM)가 감산과 함께 미국.유럽에서 1만여명의 인력을 감축키로 한 데 이어 세계 최대 가전업체인 월풀도 13일(현지시간)다운사이징을 선언했다.

월풀은 먼저 글로벌 사업부를 축소.재편하고 일부 공장을 폐쇄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향후 2년간 판촉.관리 등에서 제반 비용을 1억달러 줄이기로 했다.

이번 구조조정으로 감원되는 인원은 전 직원의 10% 가량인 6천여명이다.

월풀의 최고경영자(CEO)데이비드 휘트웜은 "북미.유럽 지역의 판매 부진으로 4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에 비해 7~8% 낮아질 것으로 예상돼 어쩔 수 없이 취한 조치" 라고 말했다.

미 최대의 장거리 전화회사인 AT&T도 내년에 전 직원의 3.8%인 6천2백여명을, 모토로라는 1분기 중에만 2천8백명을 줄일 계획이다.

컴퓨터 업체인 유니시스도 올해 매출이 10억달러 가량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자 지난 7일 전체 종업원의 5.6%에 달하는 2천명을 감원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밖에 인텔은 PC의 수요 둔화로 내년도 설비투자액을 올해(65억달러)보다 38% 줄인 40억달러로 책정했다.

정리해고의 찬바람이 불기는 금융계도 마찬가지다. 베어스턴스 증권은 투자자금 유입이 급속히 줄어 들자 지난 6일 IT 사업부의 직원 63명을 해고하기로 했다.

프루덴셜 증권도 곧 투자은행 부문의 인력감축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컨설팅 업체인 챌린저 그레이 앤드 크리스마스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에서 해고된 종업원수는 4만4천여명이며, 올 하반기 들어 매달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군살빼기는 선택이 아닌 필수〓10년간의 대호황을 뒤로 하고 경기가 둔화세로 돌아서자 미국 기업들에게 구조조정은 '선택' 이 아닌 '숙명' 으로 다가오고 있다.

13일 발표된 11월 중 소매 매출은 0.4% 줄어들었다. 전문가들은 당초 0.1% 가량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소매 매출이 감소세로 돌아선 것은 지난 4월 이후 처음이다. 특히 경기에 민감한 대표적 제품인 자동차의 판매가 몹시 부진했다.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는 이날 "미국 기업들의 내년도 부도율이 올해보다 3배 정도 증가할 것" 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자신들이 신용평가를 담당하고 있는 9천여개 기업 중 올 한해동안 1백14곳이 부도를 냈으며, 향후 12개월 동안 약 4백50곳이 무너질 것이라 게 무디스의 예상이다.

IBC 월드마켓의 애널리스트 스티븐 아이스먼은 "기업들의 인력 감축은 이제 시작일 뿐" 이라며 "내년에도 경기가 호전할 전망이 희박한 만큼 거의 모든 회사가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 나설 수 밖에 없게 됐다" 고 말했다.

김현기.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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