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골치아픈 '블랙 후유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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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제43대 미국 대선이 남긴 가장 골치 아픈 후유증 중 하나가 흑인문제다.

이번 대선에서 흑인들은 90%가 민주당 고어 후보를 찍었다. 공화당 부시 후보가 주지사로 있는 텍사스주에선 흑인 중 5%만이 부시에게 표를 던졌다.

흑인들이 공화당에 등을 돌리고 민주당을 지지하기 위해 이렇게까지 똘똘 뭉쳤던 적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CNN방송 정치평론가 빌 슈나이더는 이런 현상이 빌 클린턴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흑인사회에서 클린턴의 인기는 노예해방을 단행한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을 뛰어넘을 정도라고 한다. 클린턴은 집권기간 내내 흑인과 소수민족을 우대하는 정책을 폈다.

그의 재임기간엔 역사상 최대의 경제호황까지 겹쳐 흑인들로선 태평성대를 누렸다. 따라서 흑인들의 지지가 클린턴의 후계자인 고어에게 몰리는 건 당연하다는 것이다.

반면 부시는 주지사로 재임하는 동안 여러 차례 사형을 단행했고 그 가운데는 흑인들이 많이 포함돼 있다. 부시는 또 흑인들에 대한 우대제도(affirmative action)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거듭 밝힌 바 있다.

플로리다주에서의 선거는 흑인들의 감정을 폭발시켰다. 일부 카운티에서 흑인들이 투표를 교묘하게 거부당하거나 투표를 하지 말도록 종용받았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복잡한 기표방법의 가장 큰 피해자도 문맹률이 높은 흑인들이었다.

흑인 지도자인 제시 잭슨 목사는 선거가 끝난 뒤부터 거의 플로리다에 살다시피 하면서 반 공화당 시위를 이끌었다.

흑백문제는 미국 정치인들이 가장 조심하고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인데 부시는 당선과 더불어 이 문제에 직면하게 된 셈이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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