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바이러스와 반세기 (37)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37. 한차례 패착

바둑을 좋아하는 애기가들이 즐겨 쓰는 '손바람을 일으킨다' 란 표현이 있다. 판세가 좋다보면 깊은 수읽기를 하지 않고도 감각에 의존해 호쾌하게 돌을 놓는 행위를 말한다.

70년대말 한탄바이러스 발견으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나도 학자로서 손바람을 일으키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손바람은 결국 패착을 낳는 법. 나도 한차례 낙마한 경험이 있다.

1979년 캐나다 국립수의학연구소에 있었던 조모박사가 나의 연구실에서 같이 일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조박사는 밍크에 치명적인 뇌염을 일으키는 슬로우바이러스를 세계최초로 전자현미경 사진촬영에 성공한 전자현미경 전문가였다.

그러한 그가 내가 발견한 한탄바이러스를 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해보자며 공동연구를 제의한 것이었다.

서울에서 별도의 연구비 지원없이 한달간 내한해 나의 연구를 돕겠다고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한달간의 연구에도 불구하고 한탄바이러스는 전자현미경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데 캐나다로 돌아간 그가 돼지콩팥세포에서 한탄바이러스로 의심되는, 지금까지 보지 못한 바이러스 입자가 전자현미경에서 관찰된다는 소식을 전해온 것이 아닌가.

아무래도 미심쩍은 생각이 든 나는 유행성출혈열 환자의 혈청과 정상인의 혈청을 그에게 보내면서 각각 따로 실험해볼 것을 권유했다.

만일 그것이 한탄바이러스가 맞다면 환자의 샘플에선 발견되고 정상인의 혈액에선 발견되지 않아야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가 촬영해보니 두 그룹 모두에서 유행성출혈열 바이러스로 의심되는 입자가 나왔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렇다면 사실이 아닐 확률이 높으므로 조금 기다려보자고 했고 조박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틀림없으므로 서둘러 발표하자고 주장했다. 그렇게 반신반의하던 나를 서두르게 한 것은 다른 연구진의 발표였다.

미국립보건원의 가이듀섹박사팀이 우리가 찍은 것과 동일한 전자현미경 사진을 학회에서 발표했다. 물론 그는 그것의 정체가 유행성출혈열 바이러스인지 확실하지 않다고 말했다.

1년 뒤인 78년 9월엔 일본 도호쿠의대 이시다교수팀이 아예 유행성출혈열 바이러스란 이름까지 붙인 전자현미경 사진을 국제학회의 포스터전시장에 내걸었다.

포스터는 정식논문이 아니라 중간연구결과를 요약해 포스터처럼 만들어 학회장에 전시하는 것이므로 공식발표로 볼 순 없다.

논문발표까진 그들도 아직 검증이 더욱 필요했다는 의미다. 학문의 세계는 냉혹하기 짝이 없어 하루라도 늦게 논문을 내면 무용지물이다.

우리는 자연 초조해졌다. 특히 조박사는 나를 조르다시피해서 논문을 내자고 우겼다.

이렇게 해서 유행성출혈열 바이러스를 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하는데 성공했다는 논문이 나와 조박사 이름으로 저명한 의학잡지 랜시트에 게재된다.

이렇게 되자 미국립보건원과 일본도호쿠의대팀은 당황했다. 그들도 아직 확실한 증거를 찾지 못했는데 우리가 먼저 성공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들과의 경쟁에서 이겼다는 기쁨도 있었지만 나는 내심 불안했다. 환자와 정상인의 샘플실험을 통해 전자현미경에 나타난 바이러스 입자가 유행성출혈열 바이러스란 확증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나다를까 수개월 뒤 다른 연구진에서 우리의 연구결과가 사실과 다르다는 반박이 등장했다. 알고 봤더니 전자현미경에 나온 바이러스 입자는 유행성출혈열 바이러스가 아닌 레오바이러스란 것이 아닌가.

레오바이러스는 한국인의 혈청 98%에서 양성으로 나오는 흔하디 흔한 바이러스다. 이 무슨 망신인가 싶었다.

연구의 실무를 담당한 제1저자는 조박사였지만 연구에 대해 책임을 지는 최종저자(last author)는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이호왕 <학술원 회장>

정리=홍혜걸 의학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