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자극 60년대 왕대포집 잇따라 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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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광주시 남구 봉선동 한일병원 부근 골목. 처마 위로 '아낌없이 주련다' 란 제목과 신성일.허장강 등의 얼굴이 그려진 대형 영화 간판이 눈길과 발길을 붙잡는다.

맨유리로된 미닫이 안쪽 정경(情景)이 술맛을 다시게 한다. 드럼통 위쪽에 철판을 둘러 만든 테이블들과 등받이 없는 의자들, 둘러앉은 사람들, 연기와 김이 모락모락 하는 화로 너머로 오가는 술잔들….

색 바랜 신문 도배와 노란색 양은 주전자, 진공관식 라디오, 자석식 전화기, 화면이 작은 구식 텔레비전도 정겹다.

'자수하여 광명찾자' '간첩신고는 113' '외상사절' 등 건물 안팎의 표어.구호가 옛 추억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1960, 70년대의 왕대포집 분위기로 향수를 자극해 주당들을 유혹하는 술집이 잇따라 생기고 있다.

이들 술집은 상호도 한결같이 '아낌없이 주련다' '청춘열차' '바보들의 행진' '영자의 전성시대' 같은 옛 국산영화 제목들을 쓴다.

내부는 당시의 영화 포스터.신문 복사본.배우 사진 등으로 일부러 촌스럽게 꾸미고 있다. 노래도 50~70년 대에 유행하던 가요들을 틀어 주곤 한다.

또 대개 체인점 형식이다. '아낌없이 주련다' 의 경우 지난 8월 문을 연 봉선점 외에 광주공원 옆에도 있다. 또 황금동.운암동에 개점을 준비 중이다.

주월동 장미아파트 부근에 지난달 개점한 '청춘열차' 는 건물 입구 위에 양철판 처마를 달아 옛 시골 극장의 분위기를 연출했다.

주인 박은주(32.여)씨는 "나이 먹은 사람들은 '그 때 그 시절' 에 대한 추억을 찾아서, 젊은 층들은 호기심에서 찾아 오는 경우가 많다" 고 말했다.

대부분 술은 소주.맥주 외에 막걸리.동동주까지 팔고, 안주는 숯불에 육류.해물류를 구워 먹게 하거나 파전을 부쳐 주고 있다.

이같은 술집은 광주의 경우 현재 전남대 부근의 '바보들의 행진' 등을 포함해 10여곳이 영업 중이다.

전주시 또한 전북대 앞에만도 '아낌없이 주련다' 가 두 달 전 문을 여는 등 왕대포집이 네곳이나 생겼다.

30대 초반의 단골 회사원은 "정감이 넘치지 않느냐. 경양식집이나 호프집보다 마음이 편해 즐겨 찾는다" 고 말했다.

이들 업소의 주인들은 "우리 같은 술집이 이제 막 생겨나는 판이다" 며 "마침 경제 사정이 악화하고 있어 맞빠른 속도로 확산할 것이다" 고 말했다.

이해석.장대석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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