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한국, 북핵 덕 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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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정치부 기자

북핵 문제와 관련해 요즘 며칠 새 평양 쪽에서 쏟아지는 주장을 접하면 생뚱하다는 느낌이 든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6일 내놓은 '핵우산' 언급도 그중 하나다. 대남기구인 조평통 대변인은 "남조선은 실제로 우리의 선군정치와 핵우산의 덕을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의 핵 보검(寶劍)이 없다면 조선반도에서는 미국에 의해 열백 번도 더 전쟁이 터졌을 것"이란 조평통의 논리는 황당하기까지 하다. "전쟁이 났다면 남조선도 무사치 못했을 것"이니 북한에 고마움을 느껴야 한다는 논리인데 정말 그럴까.

무엇보다 북한의 핵 개발은 1992년 2월 남북 총리가 서명.발효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위배된다. 합의 위반으로 한반도에는 핵전쟁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북핵과 6자회담의 수렁에 빠져 6.15 공동선언 이후 급물살을 타던 남북관계도 표류하고 있다.

미국의 위협에 맞서 핵을 만들었다는 북한 주장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북한이 핵 개발에 나선 건 70~80년대다.

핵확산금지조약(NPT) 등 국제질서를 어긴 핵 개발 때문에 북.미 관계가 악화된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니란 시각이 다수다.

북한의 핵우산 논리대로라면 남측의 대북 지원은 '조공(朝貢)'이나 마찬가지다. 쌀과 비료로 '전쟁이 나지 않게 해 준'북한에 보답하는 성격이 된다. 하지만 진상은 평양 정권이 핵 개발에 눈이 먼 나머지 내팽개친 북녘 동포를 챙기자는 대북 지원이다. 지금도 한국 정부는 국제사회의 탕아로 전락한 북한을 "대화로 설득하자"며 미국.일본 등에 호소하고 있다.

그런 한국 외교관의 수장인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에 대해 북한은 "미국의 대변인.나팔수"라며 입에 담지 못할 인신공격을 하고 있다.

조평통은 지금이라도 착각과 과대망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체불명의 '대변인'을 내세워 뒤에서 돌팔매를 던지는 행태도 그만둬야 한다. 할 말이 있다면 당당히 남북 대화에 나서라. 그게 진짜 민족 공조이고, 남북한이 함께 한 우산을 쓰고 비를 피하는 지혜다.

이영종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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