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앞둔 코언 형제 신작 영화 '오! 형제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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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1980년대 이후 코미디.액션.멜로.공포 등을 넘나들며 개성 넘치는 작품을 만들어온 코언(이단.조엘 코언)형제의 신작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 가 18일 개봉한다. 제작.감독.각본 모두 코언 형제가 맡았다.

'오! 형제여…' 는 코미디 냄새가 짙게 풍기는 일종의 로드 무비. 철로건설 부역현장에서 도망친 죄수 세 명이 탈주과정에서 겪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이어진다.

영화는 처음부터 그리스의 대서사시인 '오디세이(율리시즈)' 의 틀을 그대로 빌려왔다. 주인공 이름이 에버릿 율리시즈(조지 클루니)일 정도. 험한 바다를 헤쳐나가는 고대신화의 영웅과 달리 에버릿은 1930년대 미국 남부 일대를 순례한다.

영웅이 실종된 이 시대에 서사시가 가능할까. 그것도 영화의 배경 당시 미국은 대공황으로 여간 팍팍한 게 아니었는데…. 당연히 코언 형제는 방향을 틀었다. 서사시의 웅장함 대신 파스(소극)의 가벼움을 선택했다.

에버릿과 그의 동료 델마(팀 블레이크 넬슨).피트(존 터투로)의 탈출 동기부터 그렇다. 에버릿이 댐 건설로 곧 물에 잠길 자기 집에 보물이 있다고 거짓말을 한 것.

에버릿은 다른 유능한 남자와 재혼하려는 아내를 다시 자기 편으로 돌려놓을 속셈이었다. 숱한 구혼자를 뿌리치고 율리시즈를 기다렸던 '오디세이' 의 페넬로페는 기회주의 여성으로 추락(?)한다.

율리시즈의 충직한 아들 텔레마코스도 영화에선 주지사 선거 유세장에서 노래하는 여섯명의 댄스걸로 돌변한다.

영화의 중심축은 역시 모험담이다. 겨우 탈출해온 에버릿 일행을 경찰에 신고해 보상금을 타려는 피트의 삼촌, 침례교 세례를 받고 자기 죄가 구원받았다고 좋아 날뛰는 델마,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넘겼다는 흑인 가수, 은행을 턴 돈을 훌훌 나눠주는 괴짜 강도, 유색인종을 극단적으로 혐오하는 KKK단, 주지사 선거에서 승리하려고 기를 쓰는 후보들 등. 당대 미국 사회의 음양이 만화경처럼 줄줄이 펼쳐진다.

부조리해 보이는 인간사를 무겁지 않게 풀어내는 코언 형제의 재치가 곳곳에 배어있다. 그러나 많은 장면을 짧게 짧게 삽입한 탓에 극적 긴장은 늘어지는 편. 가슴 저 밑부터 웃어대는 통쾌함이 없고 대신 힘 빠진 실소(失笑)가 연속해 터진다.

깊은 감동보다 잔 재미에 의존하는 양상이다. 현실의 재현.비판보다 우화.풍자에 무게를 실은 코언 형제의 의도일 수도 있다.

그래도 풍성하게 울려퍼지는 컨트리 음악.흑인영가, 어리숙해 보이는 등장인물, 희뿌연한 색조의 화면 등의 복고풍에서 정겨움을 느끼는 것은 우리의 현재가 고단하다는 뜻이리라.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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