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시험 난이도 고민에 빠진 중학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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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난해 서울에서 외고합격생(50여명)을 가장 많이 배출한 양천구의 월촌중학교는 다음 달 긴급교사회의를 열기로 했다. 영어평가기준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영어교사 손채은씨는 “외고 입학전형에서 영어 내신 비중이 크게 높아졌기 때문에 앞으로 영어성적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논의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올해부터 외고·국제고 입시에 중학교 영어 내신 성적만 반영토록 제도가 바뀌면서 중학교 영어교사들의 고민이 커졌다. 특히 강남·목동 등 일부 지역에서는 영어 한 문제만 틀려도 1등급을 받기 어려워 외고에 원서도 내기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시험 난이도를 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최근 밝힌 외고·국제고 입시안에 따르면 올해부터 외고 입시에는 중 2, 3년의 영어 내신 평균점수를 9개 등급으로 환산한 점수만 반영한다. 1단계에서 중학교 영어 내신(160점)과 출결로 일정 배수를 뽑고 2단계에서 영어 내신(160점)과 면접(40점)으로 최종 합격자를 선발한다.

이처럼 영어 내신 비중이 커지면서 외고에 원서를 쓰려면 1등급(상위 4% 이내)이 필수 조건이 될 전망이다. 현재도 중학교에서 1등급을 받는 수가 외고 입학정원의 두 배가 넘기 때문이다. 반면 서울의 중 3생 중 1등급을 받는 수는 4700명이 넘는다. 외고 입시 1단계에서 정원의 2배수를 뽑더라도 1등급자 중 적지 않은 탈락자가 생긴다는 얘기다.

임성호 하늘교육 이사는 “2단계에서도 영어 내신의 영향이 계속 미치기 때문에 1등급은 외고입시의 기본 자격 조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일선 중학교에서는 영어시험을 얼마나 어렵게 내느냐를 두고 고심하고 있다. 난이도에 따라 내신등급이 엇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서초구 서일중의 영어교사 권영숙씨는 “지금도 영어 잘하는 학생이 많아 고2 수준으로 문제를 내도 5%는 만점을 받는다”며 “영어 잘하는 학생들에게 점수를 짜게 줘야 해 고민”이라고 말했다. 월촌중 손채은 교사도 “올해부턴 변별력 높은 문제를 많이 출제해 시험 난이도를 높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어시험을 쉽게 낼 수도 없다. 교과부는 만점자가 1등급(4%) 선보다 많은 중학교의 외고 지원자는 내신을 모두 2등급으로 처리할 방침이다. 1등급을 받아야 할 학생이 모두 2등급으로 떨어지는 셈이다. 이러한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면 평가를 까다롭게 할 수밖에 없다.

교과부 성삼제 학교제도기획과장은 “중학교 교사가 출제하는 학교 시험 한두 문제로 외고 당락이 갈라진다면 학생들이 학교 수업에 더 충실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수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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