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기업 큰 상품] 심로악기 '심로 바이올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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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미국에 있는 현악기 판매점에 가면 가장 눈에 자주 띄는 바이올린 상표가 있다.

'Shimro' . 국내 바이올린 제조업체인 심로악기가 수출한 상품이다. 심로의 바이올린은 현재 미국 시장의 약 30%를 점한다.

1988년 첫 선을 보인 뒤 현재 전세계 30여개 국가에 수출하며 그 금액은 연간 60억원에 달한다.

중소기업특별위원회 정상봉 전문위원은 "심로 바이올린이 세계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싸면서 질 좋은 제품으로 전문가용과 교습용의 중간 틈새 시장을 파고 든 때문" 이라고 말했다.

저가 바이올린 제품들이 얇은 판자를 달궈진 쇠판으로 눌러 바이올린의 둥근 배 모양을 만드는 프레스(press) 공법을 쓰는 반면, 심로는 원목 상태에서 앞 뒤판을 깎아내는 전통적인 마스터(master) 공법을 써 고급스러운 공명음을 내게 했다.

대신 공정의 80%를 자동화하는 등 양산 체제를 갖춰 원가를 크게 낮췄다.

이에 따라 일반인들은 30만~60만원의 가격에 수공 마스터 제품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공명음을 내는 바이올린을 가질 수 있게 됐다.

'고급품의 대중화' 를 이뤄낸 심로의 바이올린은 큰 반향을 일으키며 지난 95년께 중가제품 대표 업체였던 일본의 스즈키를 제치고 최근 미국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미국의 유명 악기 무역상인 UMI가 거래선을 스즈키에서 심로로 돌린 것도 이 때 쯤이다.

심로 악기의 심재엽(沈在曄.54)사장은 ㈜대우에서 악기 교역을 담당하다 지난 78년 악기 무역업을 시작했다.

몇년 후 직접 제조 공장을 차릴 결심을 한 沈사장은 2년여동안 가구공장에 상주하다시피 하며 연구에 몰두, 직접 마스터 방식의 바이올린 제조기를 설계했다.

고급 제품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앞 뒤판은 5년이상 자연 건조시킨 가문비나무.단풍나무만을 쓰고 줄을 떠받치는 모든 부품은 인도산 흑단을 사용했다. 공정 자동화로 1백70여개 과정을 40여개로 단축해 가격 경쟁력을 갖췄다.

그러나 종업원들에게 음감(音感)을 깨닫게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한해에 수차례 사내 바이올린 연주회를 열고, 매년 한 달간 독일의 명장(名匠)들을 초대해 교육시킨 뒤에야 바이올린에서 고급스런 공명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보수적인 해외 악기 시장의 벽도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하더군요. 처음엔 한국산이라는 꼬리표가 발목을 잡았지만 이젠 '심로' 란 브랜드가 세계 어디서든 인정받고 있습니다" 沈사장은 원가를 더 낮추려고 96년 중국 톈진에 연면적 2천평 규모의 1차 가공 공장을 설립했다.

이 때문에 강원도 문막 공장의 생산성도 크게 향상돼 단일공장으로는 세계 최대의 현악기 생산 시설이 됐다.

지난해 매출은 1백40억원. 생산량의 40%는 수출하며, 나머지로 국내 시장의 60~70%를 점한다.

96년 무역의 날 국무총리상을 수상했고 지난달엔 전국중소기업인대회에서 우수 중소기업으로 선정됐다.

서익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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