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최북단서 ‘국산 명태 생포’ 특급작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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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에서 명태가 자취를 감추자 국립수산과학원이 주문진항 등 동해안 곳곳에 명태 수배 전단을 붙였다. 살아 있는 명태를 가져오면 시세의 10배를 보상해 준다는 내용이다(위 사진). 명태를 잡기 위해 출항한 정성호 선원들이 27일 오전 고성군 거진읍 해상에서 그물을 내리고 있다. [조용철 기자]

27일 오전 7시30분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북동쪽 8㎞(약 5마일) 해상. 거진항 소속 정성호(9.77t·선장 정길수)는 어로한계선 위에 위치해 겨울에만 고기잡이가 허용되는 이곳 북방어장의 북쪽 끝에 대기하고 있었다. 이날 오전 5시30분 거진항을 출항한 이 배는 더 북상하기 위해 해양경찰의 허가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윽고 날이 새면서 ‘더 올라가도 좋다’는 해경의 신호가 있자 정성호는 다시 북쪽으로 내달렸다. 5분 정도를 더 달린 뒤 뱃머리를 남쪽으로 틀면서 5명의 선원은 빠른 손놀림으로 그물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명태잡이 그물이다.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15닥(1닥은 90m 내외)의 그물 한 틀을 바다 밑에 쳤다. 정성호는 다시 북상하면서 그물을 더 칠 계획이었지만 북쪽으로 너무 올라온 데다 파도가 높다며 해경 측이 작업 종료를 요청해 투망을 포기했다.

이날 정성호가 명태 그물을 친 바다는 북방한계선(NLL) 남쪽 2.7㎞(1.7마일) 지점이다. 어선이 절대 조업할 수 없는 것은 물론 해군 군함이나 해경 경비선도 들어가지 않는 해역이다. 이날 정성호의 투망 작업에 대해 북한 경비정이 잠시 반응을 보였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긴장이 감도는 곳이다. 더구나 이날은 북한이 백령도 인근 NLL 해상에 해안포를 발사하면서 동해상에도 경계가 강화됐던 날이다.

이 같은 상황에도 이곳 바다에서 예외적인 명태잡이가 허용된 것은 동해안 명태의 씨를 얻기 위해서다. 이제는 씨가 마르다시피 한 동해안 명태를 산 채로 잡아 수정·인공부화 방식으로 치어를 생산해 보자는 시도다. 동해안 명태는 1981년 최고 16만t까지 잡혔다. 명태의 최대 산지 거진항은 명태로 뒤덮이다시피 했다. 86년에도 2만t을 지켰던 고성군의 명태 어획량은 이듬해 1만t으로, 2000년에는 1000t으로 뚝 떨어졌다. 2007년에는 1t만이 잡혔으며 올겨울에는 어쩌다 한두 마리가 잡힐 뿐이다.

이같이 명태가 자취를 감춘 것은 70~80년대의 남획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길이 27㎝ 이하의 명태를 잡지 못한다는 금어령이 70년 해제되면서 치어까지 마구 잡았다. 96년 10㎝, 2003년 15㎝ 등으로 금어 기준을 강화했지만 때가 늦었다. 동해의 수온 상승이 한 원인으로 꼽힌다.

한때 300여 척이 명태잡이에 나섰던 고성 앞바다였지만 이제는 명태 잡는 배를 찾아볼 수 없다. 정성호도 2006년을 마지막으로 명태잡이를 접었다가 4년 만에 나선 것이다.

국립수산과학원 동해수산연구소는 지난해부터 명태의 자원 회복을 위한 연구에 착수했다. 우선 소규모로 명태를 양식하고 있는 일본의 사례를 살펴본 동해수산연구소는 지난해 11월 종묘 생산을 위한 ‘산 명태’ 찾기에 나섰다. ‘시가의 10배를 보상한다’는 조건이었다. 1월에는 살아 있는 명태 한 마리가 연구소로 옮겨졌지만 두 시간 만에 죽었다. 27일에도 수족관에 있는 산 명태 4마리에 대한 제보가 들어왔지만 종묘 생산에 불가능할 정도로 어리거나 상태가 나빴다.

기다리다 지친 연구소는 바다에 나가 현장에서 직접 채란하는 시범조업을 택했다. 배에서 그물을 끌어올리는 과정에 살아 있거나 갓 죽은 명태에서 알을 채란하고 수정한다는 계획이다. 27일 친 그물은 2월 1일 끌어 올려진다. 시범조업은 2월 말까지 다섯 차례 진행된다. 동해수산연구소 이종하(55) 연구관은 “작은 양이라도 수정란을 확보, 명태 자원 회복을 위한 단초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거진=이찬호 기자 ,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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