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의 88고속도로' 긴급 점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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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21명의 목숨을 앗아간 27일 전북 장수군 번암면 88고속도로 교통사고는 직접적인 원인이 트럭의 무리한 앞지르기이지만 열악한 도로여건도 한몫을 했다.

사고 지점은 경사 7도의 내리막길에다 굽은 곳이었다. 이 때문에 유족들은 한국도로공사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魔의 도로' 로 꼽혀온 88고속도로의 실태와 문제점, 대책을 알아본다.

◇ 사고 다발=전남 담양군 고서면~대구시 달성군 옥포면 1백82. 9㎞로, 1984년 6월 개통했다.

한 해에 1백40~1백60건의 교통사고가 나고 있다. 교통량이 적은 점을 감안하면 다른 고속도로보다 발생 빈도가 높은 편이다.

교통량은 하루 평균 6천여대에 불과하다. 특히 인명 피해가 많은 대형 사고가 자주 일어나고 있다. 지난 한 해만 45명이 숨지고 3백59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올해는 벌써 사망자만도 55명이나 된다.

◇ 열악한 도로여건=말이 고속도로이지, 왕복 2차로(13.2m)로 중앙분리대가 없다.

중앙에 선만 그어져 있다보니 앞지르기 금지 구간에서조차 감행하는 차량들이 많다. 김경중(40.남원시 죽항동)씨는 "88고속도로를 갈 때마다 목숨을 내놓고 달리는 기분이다" 고 말했다. 사고의 30% 가량이 중앙선 침범으로 발생한다.

또 산악지대를 통과, 가파르고 굽은 곳이 많다. 급커브는 대부분 급경사와 겹쳐 사고 위험이 더욱 크다.

경사가 5도 이상인 곳만도 8곳. 특히 함양군 백천면 오천리 5㎞는 7도에 육박한다.

급커브는 11곳, 총 길이가 전체의 약 30%인 50여㎞나 된다. 장수군 번암면 유정리에서 남원시로 진입하는 산내면까지 7㎞는 반대편에서 오는 차량이 전혀 보이지 않아 운전자들이 추월하려다 사고가 내는 경우가 빈번하다.

올해 사고 1백34건 중 1백5건(78%)이 커브길에서 났다. 게다가 옆에 높은 산이 많고 콘크리트로 포장해 겨울철에 결빙이 잦다.

경찰이 결빙 취약 구간으로 관리하는 6곳은 조금만 눈이 내려도 2~3일은 얼어붙는다.

박덕관 88고속도로 순찰대장(경감)은 "도로 여건이 아주 나빠, 다른 고속도로보다 교통량이 적으면서도 사고는 많다" 며 "근본 대책이 시급하다" 고 말했다.

◇ 확장 및 선형 개선 계획=한국도로공사가 확장 및 곡선지점 직선화를 추진 중이긴 하다. 그러나 전 구간 완공 시기는 언제가 될지 두고봐야 한다.

기본계획은 전체적으로 왕복 4차로로, 일부 구간은 6차로로 넓히는 것으로 돼 있다. 물론 중앙분리대를 설치한다.

또 굽은 곳은 반듯하게 펴는 등 선형을 개선, 현재 182.9㎞인 연장이 1백69.4㎞로 짧아지는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총사업비가 3조6천억원 이상 들어 전 구간 추진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광주 부근의 담양 고서쪽 16.3㎞와 대구 부근의 달성 옥포쪽 13.7㎞만 1997년 8월부터 세부 설계를 해 지난 7월 마쳤다. 우선 이들 구간을 내년부터 용지를 사들여 확장하겠다는 방침이다.

건설교통부 도로정책과 심관기씨는 "두 곳은 빠르면 2002년 착공해 2006년 완공할 수 있다" 고 말했다.

한국도로공사 관계자는 "나머지 구간은 교통량 자체가 워낙 적어 투자 효율이 낮아 현재로선 확장 계획이 없다" 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전남도 관계자는 "특히 위험 곳만이라도 중앙분리대나 중앙섬 침범 금지 봉(棒)을 설치하는 것 같은 안전 조치를 해야 한다" 고 말했다.

이해석.서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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