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읽기] 전주소리축제 관객 외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7면

전라북도는 올해 문화예술 지원금(국고 포함)이 3백82억원으로 지방자치체 중 가장 많다.

최근 전주에서는 전주소리축제(총감독 이영조) 프리페스티벌이 열렸다.

내년부터 15일간 국고 25억원.전북도 25억원.전주시 10억원 등 총예산 60억원이라는 적잖은 돈이 투입될 소리축제의 향방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관심이 집중됐지만 시민들의 호응은 기대이하였고, 기대는 우려의 목소리로 바뀌었다.

더구나 50억원이란 금액은 전라북도에서 벌어지는 문화행사의 연간 예산과 맞먹는 액수다.

17일 전주공설운동장 공연은 원초적 신명을 풀어내는 소리 한마당이었으나 관객의 대부분을 차지한 6백여명의 청소년들은 신화.베이비복스 등 인기가수의 공연이 끝나자 자리를 떴고 썰렁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멀티미디어쇼는 소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영상으로 일관했다.

18일 '우리 소리의 역사를 찾아서' 도 소리의 스펙터클로 역사성을 보여주겠다는 취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다듬이질 소리와 대금반주에 의한 가곡창법의 노래는 '밤' 이나 '자장가' 의 이미지와 맞지 않았고, 가야금앙상블의 연주는 삼국시대 '밤의 소리' 과 무관한 것이었다.

사랑가 대목을 선정하여 5쌍의 남녀아이들을 등장시킨 판소리 무대는 유치원의 재롱잔치를 방불케했다.

미숙한 판소리보다는 전통놀이와 적절하게 조화시킨 전래동요의 공연이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대부분의 관객들은 프로그램 자체보다 지방에서 접하기 힘든 현란한 조명과 음향에 압도된 듯했다.

마지막날 중국의 얼후, 일본의 샤미센이 등장한 한.중.일 3국의 전통음악 공연이나 호남 귀명창들의 사랑을 받은 안숙선 명창의 판소리와 가야금 병창은 다소나마 축제의 가능성을 엿보게 했다.

피날레 공연은 2억5천만원의 예산을 들인 산타체칠리아 오케스트라(지휘 정명훈)의 공연. 하지만 이는 서울공연을 앞둔 지방나들이였을 뿐, 의도했던 '동서양 음악의 만남' 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다른 페스티벌과 차별화된 전주소리축제가 되려면 잡다한 '사운드' 를 포괄하는 모호한 성격의 축제로는 곤란하다.

가령 전주의 지역적 특성을 살려 판소리 등 인성(人聲)을 주제로 전통음악.현대음악.월드뮤직을 한데 아우르는 것은 어떨까. 또 '음악과 제의(祭儀)' 라는 주제로 범패를 포함한 전세계 종교음악을 한 자리에 모으는 방법도 가능하다.

전주소리축제에 대한 장기적인 청사진 마련이 보다 시급하다.

임미선 전북대 국악과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