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서부개척시대] 上.꿈틀대는 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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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2000년 중국의 화두는 단연 '서부 대개발' 이다. 중국 언론에 서부특집이 실리지 않는 날이 없고 중국 지도자들이 외빈을 만날 때 빼놓지 않고 거론하는 게 이 서부 대개발이다.

21세기 중국의 명운이 서부 대개발의 성패에 걸렸다는 이야기다. 중국은 향후 국가재정의 70%와 대외차관 80%를 서부 대개발에 쏟아 부어 '현대화' 의 꿈을 기필코 실현하겠다는 각오다.

중국의 이같은 대역사는 결코 중국만의 일이 아니다. 세계는 물론 수교 8년만에 중국의 제3 교역국이 된 한국에도 엄청난 파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서부 대개발의 양대사업인 인프라 건설과 생태환경 살리기, 서부로 달려가는 외국 기업들의 모습 등을 현장취재를 통해 세 차례로 나눠 살펴본다.

10월 19일 오전 중국 서북부 간쑤(甘肅)성의 란저우(蘭州). 당(唐)나라 시절 서역과의 교역 중심지였던 이곳에서 황허(黃河) 상류지역을 20㎞ 정도 거슬러 올라가자 허커우(河口)란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우르르 쾅 쾅. " 발파작업으로 누렇다 못해 붉은 빛을 발하는 강변 언덕이 순식간에 무너지자 '대우중공업' 이란 표지가 선명하게 붙은 굴착기들이 달려가 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그 아래 강가엔 40여명의 중국인 인부들이 부지를 다지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칭하이(靑海)성 차이다무(柴達木)분지에 자리한 서베이(澁北)의 천연가스를 9백53㎞ 떨어진 란저우로 옮기기 위한 가스관을 건설하는 현장이다.

중국이 서부대개발 핵심사업으로 추진 중인 '서기동수(西氣東輸.서부의 천연가스를 동부로 수송한다)' 의 일환이다.

"지난 3월에 시작, 2001년 말 완료 예정인 이 공사가 순조롭게 끝나면 해마다 20억㎥의 천연가스를 동부로 공급할 수 있습니다. "

란저우의 란치(燃氣.가스)화공집단공사 저우톄난(周鐵男)총경리의 말이다. 24억위안(약 3천억원)을 투자하는 이 공사로 란저우의 전력과 화학비료 등 각 산업이 재도약할 전망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동안 석탄을 주로 사용, 중국의 대표적 대기오염 도시로 낙인찍혔던 란저우가 푸른 하늘을 되찾는 효과도 있다.

그러나 서베이~란저우 가스관 공사는 중국 전체 '서기동수' 계획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중국 최대 천연가스 매장지인 신장(新疆)타림분지에서 중국 경제중심지인 상하이(上海)까지 4천2백㎞ 길이의 가스관 공사가 내년 착공되는 것이다.

3년 일정의 이 공사에 중국은 3천억위안(약 36조6천억원)을 쏟아부을 예정이다. 30년 동안 매년 1백20억㎥의 천연가스를 상하이 등 동부 공업지대에 공급하기 위해서다. 서부의 동력원을 개발, 그 힘을 동부로 수혈해 중국의 21세기 발전 원동력으로 활용하겠다는 야심이다.

앞서 지난 15일 찾은 충칭(重慶)의 창장(長江)유역. 황허(黃河)와 더불어 중국의 양대 젖줄인 창장에서도 대토목 공사가 한창이다.

인구 3천만명으로 세계 최대도시인 충칭과 중국 최남단 광시(廣西)성 베이하이(北海)항을 잇는 1천1백㎞ 길이의 고속도로 건설에서 가장 난공사로 꼽히는 창장의 다포쓰(大佛寺)대교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미 완성된 두 중추교각 높이만 2백m. 1만t급 대형 화물선이 창장 상류까지 운항할 수 있도록 교량 상판이 수면 위 60여m 높이에 걸쳐지게 설계됐기 때문이다.

현장소장인 루융(盧勇)은 "두 핵심교각 사이가 4백50m로 아시아 최장" 이라고 자랑했다. 충칭고속도로 건설지휘부의 저우주(周竹)주임은 "왕복 6차선의 이 고속도로가 2001년 완공되면 서부 내륙과 남동 해안지대를 잇는 물류비용이 절반으로 줄게 된다" 고 말했다.

지역개발의 핏줄에 해당할 도로와 철도를 부설하느라 중국 서부는 커다란 공사판으로 탈바꿈한 지 오래다.

4만여개의 촌락들을 이어줄 총 1만5천㎞의 8대 도로 건설공사가 시작됐고 1천억위안(약 12조2천억원)을 들여 2001년부터 5년 동안 철로도 1만8천㎞를 잇는다.

11개의 신공항 건설과 9개 공항의 확장사업이 서부에서 집중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수리시설을 보강하고 통신망을 구축하는 작업도 실행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도대체 얼마만큼의 천문학적인 자금을 필요로 하는지도 모를 엄청난 인프라 건설이 '서부대개발' 이란 이름 아래 중국 서부 곳곳에서 대대적으로 진행 중인 것이다.

중국 전체면적의 56%를 차지하는 서부는 수자원량의 82%, 천연가스의 86%, 석탄의 36%를 보유하고 있으며 1백20종의 광물이 매장된 자원 보고다. 중국이 서부지역 인프라 구축에 이처럼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때문에 중국의 유명 경제학자인 후안강(胡鞍鋼)은 "서부대개발은 자원을 개발하느냐 안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어떻게 개발하느냐의 시장경제 문제" 라고 역설한다.

'현대판 만리장성' 에 비유될 서부 인프라 구축 작업이 완성돼 동맥 곳곳을 타고 피가 돌기 시작하면 중국 서부라는 '잠자는 용(龍)' 이 마침내 오랜 꿈에서 깨어나 화려하게 승천할 것이란 게 서부인들의 한결같은 바람이다.

<특별 취재팀>

유상철 베이징 특파원

장세정 국제부 기자

안성식 사진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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