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수 교수의 서체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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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안상수 교수가 지금까지 개발한 한글 글꼴은 모두 네가지다.

1985년 처음 선보인 '안상수체' 를 비롯해 '이상체' (90년) '미르체' (92년) '마노체' (93년)가 그것. 이 가운데 이상체는 그가 좋아하는 시인 이상(李箱)의 글씨.삽화 등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그의 글꼴 개발 원칙은 한글의 전형적 형태인 네모꼴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네모꼴 글자체 한벌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무려 1만1천1백72개의 음절을 디자인해야 한다.

그만큼 개발 과정이 복잡하다는 뜻. 그러나 극단적인 탈네모꼴에서는 자음과 모음 24개만으로도 디자인이 가능하다. 간편하고 세련미가 넘치는 안상수체도 이런 과정을 거쳐 나왔다.

최근 그의 작업에는 한글을 구성하는 닿소리(자음)와 홀소리(모음)의 단순한 해체.재조합.어울림의 단계를 넘어 조형적 아름다움을 보다 강조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포스트 모더니즘과 호흡을 같이 하며 글꼴을 그런 예술의 한 영역으로 확대한 느낌이 든다. 때문에 미술계 일각에서는 이 점을 두고 "장난을 하고 있다" 는 식의 곱지 않은 시선도 보낸다.

그가 20년째 한글에 매달리는 이유는 명료하다. 그는 "글자는 문화와 정보를 담는 그릇이며, 글꼴(타이포그래피)이란 그 그릇들의 시각적 질서를 바로잡는 것" 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같은 애정을 펼칠 공간 중 신문 매체를 으뜸으로 꼽는다. '정보편집디자인' (그는 신문편집을 이렇게 부른다)이야말로 가장 실용적이면서도 파급력이 큰 수단이기 때문이다.

요즘 그는 바빠도 행복하다. 그동안 한글 글꼴 연구자들이 많이 나와 서로 의지가 된다. 서울여대 한재준(시각디자인학과).단국대 홍윤표(한국학)교수, 이 분야에 새롭게 도전장을 내고 있는 대학 동아리들이 다 그의 동료이자 경쟁자들이다.

안교수는 지난해 7월 대법원이 글꼴에 대한 저작권을 인정해 주는 판결을 내려 이 분야 디자이너들의 오랜 숙원을 풀어주었다며 기뻐하기도 했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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