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주의 세대가 쓴 유고 옹호론 '…민주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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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아마도 도올 김용옥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지식사회의 화제를 몰고 다니는 도올의 TV강연 탓에 공자 관련서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원로 차주환(서울대 명예교수)선생의 '공자, 그 신화를 밝힌다' (솔)가 재출간 된데 이어 현대 신(新)유가 철학의 간판 스타인 차이 런호우(蔡仁厚)의 '공맹순(孔孟荀)철학' (예문서원)번역본이 선뵀고, '주희가 집주한 논어' (장락)도 출간됐다. 이중 함재봉 교수(42, 연세대)의 신간 '유교 자본주의 민주주의' 는 단연 관심의 표적이다.

◇ 성찰적 유교주의자 함재봉〓그는 학술지 '전통과 현대' 를 운영하면서 친 유교주의의 입장을 개진해온 논객. 그의 퍼스낼리티도 관심이다.

함병춘 전 주미 대사의 아들인 그는 합리주의 세례를 충분히 받은 세대. 따라서 '성찰적 유교론자' 인 그는 수구주의 앞세대와 또 다르고, 현단계에서의 유교 논의에 대표성을 갖고 있다.

그는 동아시아의 유교 전통을 오늘의 주류사상인 자본주의 민주주의와의 관련 속에서 재해석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논의의 지평을 넓혀보자는 복안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논쟁에서 자유롭지는 않을 것 같다. 그의 말대로 유교란 우리 사회 속에서 그만큼 예민한 논쟁거리이기 때문이다.

◇ 동아시아 '족보없는 자본주의' ?〓책에서 개진된 그의 입장은 선입견에 대한 부정에서 출발한다.

근대화와 경제발전 과정은 시장경제 모델(서구), 개발국가 모델(동아시아)이라는 두개의 서로 다른 길이 존재해왔고, 따라서 동아시아의 발전 모델은 '족보에 없는 사이비 모델' 이라는 판단, 그것부터가 근거없다는 견해다.

외려 동서를 막론하고 초기의 근대국가는 강력한 중앙집중체제 아래서 성립됐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마키아벨리.홉스등이 근대사상가들이 이론으로 뒷바침했던 프랑스.독일.일본의 사정이 그러했다.

다만 후기 근대국가는 관료주의과 중앙집권 체제을 버리고, 사적인 개인과 부르주아라는 두개의 축을 가진 자유민주주의로 변신한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의 발전 모델이란 분명 역사상의 보편적 과정이라고 그는 잘라 말한다.

◇ 독자적 모더니티를 세우자〓함재봉의 시선은 생각 이상으로 깊다.

이를테면 그는 '자본주의 자유주의 그 이후' 의 대안적 모델을 유교에서 발견할 수 있지않을까 하는 암중모색을 책의 곳곳에서 은근히 펼친다.

"20세기 모든 사상의 최후 승리자인 자유주의 자본주의란 그 자체가 우리의 절대적 이상이 되기에는 너무 초라하다. 칼 포퍼, 프리드리히 하이예크 등 냉전 자유주의 사상가들은 전체주의에 대항하기 위한 '소극적 자유론' 을 발전시켰을 뿐이다. 이제 서구는 보편의 가치를 창출할 의지도 힘도 상실했다. 헌팅톤의 문명충돌론이라는 것도 그런 상황을 반영한다." (33-38쪽 발췌)

따라서 함재봉에게 유교란 수구적 가치가 아니다.

'이식된 근대' 대신 '독자적인 모더니티 건설과 대안 제시' 를 위한 모색이 필요하다는 것, 따라서 유교란 근대 이전의 담론체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위한 중요한 '비빌 언덕' 이라는 것이다.

◇ '진정한 스타' 대망론〓불과 지난해 까지도 유교는 찬반의 입장이 칼로 두부 가르듯 갈라졌다.

왜 그럴까. 유교가 아직도 우리와 너무 가깝게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함재봉의 등장은 그래서 의미있다. 서구 모더니티의 지평(자본주의 자유주의)를 충분히 읽었고, 물려받은 유산도 거리감을 두고 돌볼수 있는 첫 세대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 유교논쟁은 이 책 한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함재봉의 약점과 우리 학계의 경쟁력 취약성을 지적해야 한다. 우선 저자의 논의는 어딘가 붕 떠있다. 이말은 적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과도 통한다.

이를테면 유교 논쟁의 너무 상당부분을 아시아적 가치 논쟁, 동아시아 발전 모델같은 서구 담론에 의지하고 있다.

또 하나, 우리 학계에는 걸출한 스타가 없다.

학문의 스타 등장없이 논의의 진전은 어려운 법인데, 이를테면 일본 학계의 수준을 높인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같은 이가 없다. 그는 에도(江戶)시대 오규 쇼라이(荻生徠)연구를 통해 '동양 정치사상의 마키아벨리' 를 발굴해냈지 않은가.

한국의 오규쇼라이는 적지않다. 다산 정약용, 혜강 최한기등이 독자적 근대사상의 광맥에 해당한다. 문제는 원광을 캐낼 걸출한 스타가 없는 것이다.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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