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강국의 비결 ② 뉴질랜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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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MY STUDY는 교육 강국 핀란드에 이어 교육 청정국 뉴질랜드의 교육환경과 철학을 들어봤다. 15일 이태원 대사관저에서 리처드 만(Richard Mann) 뉴질랜드 대사의 부인 미셸 만(Michelle Mann)을 만났다.

교사는 문제해결을 돕는 역할에 그쳐

“뉴질랜드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어요. 2006년 과학적 소양 능력 부문에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3위를 차지했죠. 토론 위주의 교육이 낳은 결과입니다.” 토론은 상호작용을 중시하는 뉴질랜드 교육의 핵심이다. 토론은 교실 안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학생들은 적극적인 토론을 위해 환경운동이나 봉사활동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만은“설득력 있는 의견을 제시하기 위해 학생들은 다양한 경험을 한다”고 전했다.

뉴질랜드 학생들은 세계 토론대회에서 총 4번 우승했다. 만은 ‘발표수업과 칭찬’을 그 비결로 꼽았다. 도서관에 가거나 사전과 인터넷을 검색하는 등 관련 내용을 조사한 뒤 수업시간에 발표하는 프로젝트 수업은 학생들의 토론실력을 키워주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발표 후에는 칭찬이 이어진다. 그는 “자신감을 고취시켜주는 데는 칭찬만한 약이 없다”며 “이런 수업방식 덕분에 아이들은 자기 생각을 당당하게 말하는 것은 물론 상반된 의견을 가진 사람도 존중할 줄 알게 된다”고 말했다.

뉴질랜드 공교육은 ‘창의적인 문제 해결능력’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다. 따라서 수업은 일상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던져주고 토론을 통해 해결책을 찾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분수의 개념을 가르치기 위해 교사는 ‘케이크 2조각을 3명이서 사이 좋게 나눠먹는 방법은 무엇일까?’ 같은 문제를 낸다. 학생들은 케이크를 공평하게 나눠먹는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분수 개념을 익히게 된다. 만은 “교사의 역할은 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알고 있는 지식을 총동원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개개인을 존중하는 교육

의무교육은 6살부터지만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5살이 되면 학교에 간다. 일정한 연령이 되면 동시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여느 나라들과 달리 5살 생일이 지나면 자유롭게 입학이 가능하다. 거주지, 학습능력 등 개인적인 특성에 따라 입학 시기를 조절할 수 있게 배려한 것.

만은 “사회적인 나이보다 아이들의 상태나 성향이 학습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고려한 수월성 교육의 단면”이라고 설명했다. 뉴질랜드 학제는 초등(primary)6년,중등(Intermediate)2년, 고등(College)5년 총 13년으로 한국보다 1년이 길다. 뉴질랜드 교실에서는 교사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수업을 듣거나 안락의자에 앉아 잡담을 나누는 학생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교사는 각각의 소그룹을 돌아다니면서 학생과 질문을 주고받으며 수업을 진행한다. 그러다 보니 교탁이 필요 없다.

교사는 그룹별 또는 개인별로 수준에 맞는 수업자료를 따로 준비한다. 굳이 교과서를 갖고 오지 않아도 수업을 듣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 성적순으로 줄을 세우는 시험도 없다. 대신 학생들은 스포츠 활동, 클럽활동 등을하며 소질과 적성 계발에 몰두한다. 만은 뉴질랜드 교육이 이토록 개인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를 “뉴질랜드=이민국”이라는 데서 찾았다. 뉴질랜드에 살고 있는 한국인만 해도 3만 2000여 명에 이른다. 전체인구의 약 1%에 해당하는 숫자다.

여러 나라의 학생들이 한 반에 모여 있는 만큼 교사들은 다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수다. 이들은 문화 상대성을 바탕으로 학생들을 관찰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 준다. 만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유학생들을 위해 학교에서는 ESOL(English for Speakers of Other Languages)프로그램을 개설하기도 한다”며 “교사들은 최선을 다해 학생들의 성취를 격려한다”고 말했다.

속도보다 깊이가 중요

뉴질랜드 학부모들은 선행학습보다 사고력 향상에 더 관심이 많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지 1년이 지나도록 얇고 작은 영어(국어)책 한 권만 배워도 전혀 조급해하지 않는다. 누가 먼저 빨리 아느냐 보다 누가 더 깊이 생각하고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딸에게 홈스쿨링으로 스페인어를 가르친 적이 있어요. 영어와 발음체계가 달라 진도가 더딜 수밖에 없었죠. 전 다그치지 않고 스페인의 문화와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호기심이 생기면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게 되거든요. 결국 딸은 웰링턴에 있는 빅토리아 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 지금은 정부기관에서 일하고 있어요.”

독서를 중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들은 독서라는 간접경험을 통해 일찍부터 여러 가지 배경지식을 쌓아야 깊이 있는 사고를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사서출신인 만 역시 잠자리에 들기 전, 아이들과 한 시간씩 책을 읽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대다수의 가정에서는 저녁식사 후 온 가족이 둘러 앉아 책을 읽거나 도서관으로 주말 나들이를 간다”며 “독서는 가족 간의 정서적 유대감을 쌓는데도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사진설명]미셸 만은 “친절하고 아름다운 한국은 뉴질랜드와 닮았다”며 “유학에 관심 있는 한국 학생들이 뉴질랜드로 많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송보명 기자 sweetycarol@joongang.co.kr >

< 사진=김경록 기자 kimkr8486@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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