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남북 국방회담 신뢰구축 기대 못미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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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 이틀간 한반도 남쪽 끝 제주도에서 남북한의 군 수뇌가 만났다. 분단 반세기만의 첫 만남이었다.

특히 1백55마일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은 아직 군사적으로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고, 앞으로도 상당기간 각각 서로 다른 체제와 사상, 이념의 길을 걸을 것이 분명하기에 이번 회담은 기대도 컸던 만큼 우려 또한 없지 않은 회담이었다.

우선 이번 회담은 그 자체만으로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에 충분하다. 남북의 군 수뇌가 공동발표문을 통해 천명한 6.15 공동선언의 이행을 위해 양측 군은 적극 협력하고,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험을 제거하고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공동 노력한다는 등의 합의사항들은 남북간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노력에 군도 적극 동참한다는 것으로서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분단 반세기만의 첫 남북 국방장관 회담에서, 특히 남북 두 정상이 합의한 전쟁방지와 화해협력 증진을 군사적으로 뒷받침할 책임이 있는 최고위급 군 수뇌 회담에서 군사직통전화 설치.군사훈련 상호 통보 및 참관.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군사회담의 정례화 등과 같은 가장 초보적인 수준의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에도 합의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기초적인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들은 이미 8년 전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남북 쌍방이 합의.서명.발효시킨 것들이 아닌가. 왜 이런 것들이 지금 다시 쟁점 대상이 돼야 하는지... 이는 남북 군사문제의 현실적인 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다.

더욱이 북측은 보다 높은 차원의 신뢰구축 조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 경의선 철도연결과 도로건설 사업을 추진하는 데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면서 그 보다 훨씬 낮은 수준의 초보적인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에는 왜 선뜻 나서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북한당국이 아직도 '군사문제 따로, 경협문제 따로' 라는 생각을 하고, 특히 군사문제는 북한과 미국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큰 착각일 것이다.

남북간의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을 위한 실천적 행동이 수반되지 않는 한 어떤 교류협력도 6.15 남북정상 공동선언에 포함된 자주정신이나 화해협력 정신에 부합한다고 볼 수 없다.

이번 회담에선 비록 우리측이 제기하는 군사 긴장완화 및 신뢰구축에 관해 현저한 진전은 없었지만 이에 대한 우리의 입장과 견해를 북측에 분명히 전달하는 기회는 됐을 것이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남북간의 어떤 합의나 협력도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2차 남북 국방장관회담을 올해 11월께 북측지역에서 갖기로 한 것은 잘된 일이다. 그 때는 북측이 우리의 견해와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 존중하는 자세를 보여줘야 할 것이다.

1차 회담 때 북측이 했던 것처럼 2차 회담 때는 우리도 판문점과 육상로를 통해 북한에 들어가 한반도 북쪽 끝 백두산에서 제2차 남북 국방장관회담을 갖게 되길 기대해본다.

박용옥 <전 국방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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