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자이 2기 내각 취임식 중 대통령궁 인근서 폭탄 터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수도 카불은 아프가니스탄 내에서 그나마 치안 상황이 가장 좋은 곳이다. 정부 기관과 유엔 등 국제기구 사무소가 밀집해 있어 경비가 삼엄하기 때문이다. 그런 카불이 또다시 뚫렸다. 반정부 무장 세력인 탈레반 테러리스트들은 18일 대통령궁 인근에서 폭탄을 터뜨렸다. 외국인들이 주로 머무는 5성급 세레나호텔과 중앙은행, 법무부 인근에서도 총격전이 벌어졌다. 지난해 10월 말 카불 유엔 직원 숙소 테러로 12명이 숨진 이후 3개월 만이다. 더구나 이날은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의 2기 내각이 출범하는 날이었다.

◆쇼핑센터가 전쟁터로=테러리스트와 아프간 군경 사이에 가장 격렬한 교전이 발생한 곳은 대통령궁 인근의 그랜드 아프간 쇼핑센터였다. 이곳의 한 가게 주인은 “대통령궁 근처에서 폭발이 있은 직후 자살폭탄 테러리스트로 보이는 남자 셋이 쇼핑센터로 뛰어 들어왔다”고 전했다. 이후 총격전이 벌어졌고 건물 2, 3층에선 불길이 치솟았다. 이후 인근 외교가와 정부 청사 부근에서도 커다란 폭발음이 이어졌다. 또 다른 쇼핑 센터 한 곳에선 차량폭탄이 터졌다.

카불에서 정부 건물을 노린 동시다발 테러가 발생하기는 지난해 2월 이후 처음이다. 당시 탈레반은 법무부와 교정국 청사 등에 대해 자폭 테러를 가하며 군·경과 총격전을 벌였다. 이 테러로 모두 26명이 숨지고 55명이 다쳤다.

◆탈레반의 카르자이 정권 흔들기=18일은 카르자이 대통령의 2기 내각이 공식 출범하는 날이었다. 총 24명의 장관 중 국방·내무장관 등 14명이 취임 선서를 하는 도중에 테러 공격이 시작됐다. 아프간 의원인 굴라라이 사피(53·여)는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탈레반이 새 정부에 혼란을 주기 위해 이날을 공격 날짜로 정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카르자이는 이달 들어 의회에 두 번이나 내각 임명 동의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14명만 승인을 받아 ‘반쪽 내각’이 출범하는 상황이었다. 안 그래도 정부의 무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은 상황에서 내각 출범 당일 테러로 ‘쐐기’를 박으려 했다는 분석이다.

이번 테러는 지난해 말 미군 3만 명의 아프간 증파를 결정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에게도 정치적 부담이 될 전망이다. 가장 안전하다는 카불마저 잇따라 탈레반의 공격을 받는 상황이라면, 추가 파병에 대한 여론이 더 악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번 테러 직후 “무자비하고 극단적인 행위”라는 비난 성명을 발표했다.

오대영 선임기자, 김한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