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겨울 속 한여름 … 실내외 온도차 42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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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7도까지 떨어진 15일 경기도 시흥시 정모(37)씨 부부가 아파트 거실에서 10개월 된 아들을 돌보고 있다. 정씨 부부는 모두 반팔 셔츠 차림이다. 이런 모습은 아파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안성식 기자]

17일 낮 12시 서울 중계동의 한 아파트. 디자인회사를 경영하는 안모(46)씨가 반소매 차림으로 거실의 TV 앞에 앉아 있었다. 이날 최저기온은 영하 9도였다. 부인 김모(42)씨와 중·고생 두 딸도 반팔 티에 얇은 면바지를 입고 있었다. 다소 덥게 느껴지는 거실의 온도를 측정하니 28도가 넘었다.

“덥지 않으냐”고 묻자 안씨는 “정확한 온도는 잘 모르지만 반팔 티를 입고 있어도 안 추울 정도로 실내 온도를 높여 놓는다”고 말했다. 아내 김씨도 “집안일을 하다 보면 가끔 덥지만 늘 이렇게 지낸다”고 했다.

한국의 가정은 겨울에도 덥다. 일본이나 프랑스 같은 선진국 가정보다 에너지를 많이 쓴다. 아파트에서는 한겨울에도 반바지에 반팔을 입고 지내는 풍경이 흔하다. 문제는 에너지 낭비가 아파트 같은 가정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백화점·기업체 사무실·상점 등의 실내 온도가 적정 온도(영상 18~20도)를 넘는다.

서울의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4.4도까지 떨어져 추위가 절정에 달한 14일 오후. 본지 취재팀이 지하철 7호선 강남구청역 안내센터에 들어서자 후끈한 더운 바람이 천장에서 내려왔다. 히터를 보니 설정 온도가 28도였다. “공기업의 실내온도를 18도 이하로 낮추라는 정부 지침을 아느냐”고 직원에게 묻자 “구체적인 지시를 못 받았다”는 답변뿐이었다. 책상 옆에는 전기히터까지 켜져 있었다.

이날은 하루 평균 기온마저 영하 9도로 종일 매서운 추위가 기승을 부렸다. 14일 서울의 실내는 얼마나 따뜻했을까. 취재팀은 하루 동안 관공서·쇼핑몰·서점·패스프푸드점 등 서울 시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시설 11곳의 실내 온도를 확인해 봤다. 평균 온도는 22.6도로 겨울철 적정 온도인 20도를 웃돌았다.

강남구 삼성동의 대형 지하쇼핑몰인 코엑스. 한 패스트푸드점 앞에서 전자 온도계를 켜자 금세 26도까지 올라갔다. 바깥의 최저기온 보다 무려 40도나 높았다. 26도는 여름인 서울의 7월 중·하순 평균 기온과 맞먹는 수준이다. 주변에는 외투를 벗어 들고 다니는 사람이 눈에 많이 띄었다.

대학생 서세정(21·여)씨는 “추운 바깥에 있다가 들어와서 따뜻하다고 느꼈는데 다니다 보니 덥다”며 “온도를 더 낮춰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후 3시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의 3층 여성정장 매장에서는 대부분의 여성손님이 외투를 벗고 가벼운 셔츠차림으로 쇼핑하고 있었다. 실내온도는 25도였다.

고급식당가인 중구 태평로의 서울파이낸스 센터 지하 1층에서 일하는 직원 정모(51)씨는 “보통 유니폼 셔츠 하나만 입는데 점심 때 손님이 몰리면 더워서 땀이 날 정도”라고 말했다. 오전 11시 실내 온도는 23도였다.

은행이나 사무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오후 1시쯤 여의도의 H증권 직원 김모(32)씨는 “사무실이 너무 따뜻해 가끔은 땀을 흘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신한은행 강남역점도 오후 실내 온도는 영상 23도였다.

관공서는 나은 편이었다. 정부의 강력한 에너지 절약 지침 때문이다. 오전 10시쯤 서울시청 서소문 별관 1층의 다산플라자는 온도가 20.3도였다. 출입문 주변은 추웠지만 안쪽으로 들어가자 따뜻했다. 민원차 방문한 김장환(60·서울 중화동)씨는 “춥지도 덥지도 않고 적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종로구청 민원실과 서초구청 OK민원센터도 18도 안팎이었다.

◆“에너지 중요성 깨달아야”=가정의학과 전문의들은 “실내외 온도 차가 너무 크면 몸에 부담이 생기고 감기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고 경고한다. 특히 겨울철 실내온도가 올라가면 공기가 건조해져 가려움증이나 아토피 피부염을 악화시키기도 한다. 그래서 옷을 두껍게 입고 몸을 따뜻하게 하면서 18~20도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는 설명이다. 정한경 에너지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전기 요금 탓에 국민들이 에너지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박유미·강기헌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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