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럼] 일본기업 환영할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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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일간에 자유무역협정이 추진되고 있다. 이게 되면 세계가 놀랄 것이다.

배타적인 나라로 소문난 양국이 자유무역을 펼쳐나가겠다는 것이니 말이다. 양쪽 모두 "잘될까" 하는 의구심은 물론 이미 찬반 양론이 만만치 않다.

더구나 우리쪽에선 무역적자뿐 아니라 일본의 역사적 괘씸죄를 생각하면 턱도 없는 이야기라고 일소에 부치는 사람들도 적지 않으리라.

*** 자유무역협정 이뤄져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무역협정은 꼭 추진돼야 한다. 일본이 압력을 넣는 것도 아니다. 한국경제 스스로를 위해서도 해야 한다.

일본상품이 한국시장을 송두리째 다 들어먹을 것이라고 지레 겁먹을 일이 아니다. 발상을 바꿔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서자. 말이 났으니 말이지 잘사는 집하고 못사는 집이 서로 문을 열면 어느쪽이 더 챙길 게 많겠나. 한국이나 일본이나 옛날하곤 상황이 확 달라졌다.

유행하는 말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우선 한국의 개방정책은 IMF사태를 계기로 일본을 빰칠 정도의 글로벌 수준으로 변했다.

유수의 국내기업들이 통째로 외국인 손에 넘어가는 일도 예사다. 한국기업과 외국기업의 구분 자체가 어려워져가고 있는 판이다.

이런 마당에 일본기업의 한국시장 진출은 오히려 장려해야 할 사항이다. 한국기업의 실력 또한 그전 같지 않다. 일본시장 진출에 충분히 도전해 볼만해졌고 일본의 시장여건도 최근 크게 달라지고 있다.

물론 일본기업에 치여 망하는 국내기업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 중에는 당연히 망해야 하는 기업도 있겠지만 정말 아까운 기업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일본기업 환영정책은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그냥 들어오게만 해선 부족하고 들어와서 충분히 돈도 벌게 해줘야 한다. 그래야 한국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 라는 대통령 말씀도 거짓이 안되고 더 많은 기업과 일자리가 생겨날 수 있다.

한국에서 만드는 일제상품이 거꾸로 일본 본토시장을 공략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생겨날 것이다. 상품만 들어오는 게 아니라 잘만하면 기술.자본.설비 등을 포함한 일본의 산업 자체가 상당부분 한국으로 통째로 옮겨오게 돼 있다. 대일무역적자 문제만 해도 수입을 줄일 생각보다 수출을 늘릴 계책을 써야 한다.

뭐니뭐니 해도 일본의 제조업은 여전히 세계최고다. 어떻게 해서라도 이들을 끌어들여야 우리도 살 길을 찾을 수 있다.

종전처럼 구걸을 하지 않아도 제발로 찾아들게 돼가고 있다. 기술이전의 부메랑 효과 핑계도 더이상 안나온다.

한국이 예뻐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생존전략 차원에서 한국행을 결심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변화의 배경에는 중국이라는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 어느새 중국이 일본경제의 주적(主敵)으로 자리매김 함으로써 한국은 견제의 대상이 아니라 요긴한 파트너가 됐다. 대일관계에서 이같은 호조건은 일찍이 없었다. 일제상품의 범람을 걱정할 일이 아니다.

일본과 지구상에서 가장 가까운 부산지역에는 일본 돈과 일본인들이 득실거리게 해야 한다. 더 많은 일본자본과 기술과 공장을 유치하는 것은 물론이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일본인들을 사로잡을 갖가지 유인책을 만들어 돈을 벌어야 한다.

세계최고 부자나라를 지척에 두고 그들을 상대로 돈을 벌지 못한다고 해서야 변명의 여지가 없다.

*** 中 견제위한 韓 - 日 공조

어차피 자유무역협정은 서두른다고 빨리 될 일이 아니다. 일본도 이견이 분분하다. 정부 안에서도 통산성은 적극적인 반면, 다른 부서는 소극적이다.

농산품의 수입개방에 대한 터부는 한국보다 더하고, 더욱이 사람의 자유이동까지 수반될 수밖에 없는 이 협정에 대한 합의도출이 쉽게 될 리 만무하다.

한국도 일본에 압박을 가하는 것보다 국내 합의가 더 어렵다. 그러나 일본기업 유인정책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자유무역협정 여부에 관계없이 서둘러 취해야 할 가장 절실한 한국경제 생존대책이다.

일본기업에 한국에 들어와 돈 벌 환경과 기회를 만들어줘야 한다. 그게 바로 국제화요, 이게 성공하면 가장 충격을 받을 나라는 다름아닌 일본일 것이다. 좀팽이 일본한테 아쉬운 소리 계속할 게 아니라 한국 스스로 국제화의 본때를 보여줄 때다.

이장규 <일본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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