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대기자의 투데이] 남북화해의 걸림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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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북한이 미군의 장기적인 한국주둔을 환영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인들 했을까.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최근 밝힌 대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주한미군의 계속주둔을 받아들였다면 그것은 북한의 코페르니쿠스적인 인식전환이다.

金대통령은 평양에서 金위원장에게 통일 이후에도 주변의 어느 한 나라가 한반도에서 독점적인 패권을 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미군의 계속주둔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金위원장은 자신도 같은 생각이라고 대꾸하면서, 북한은 이미 특사를 통해서 그런 뜻을 미국에 전했다는 사실까지 털어놓았다.

북한은 적어도 5년 전에 미국에 주한미군에 관한 새로운 인식을 간접적으로 전달한 것 같다. 중앙일보는 1995년 9월 28일 미국 굴지의 북한전문가 셀릭 해리슨의 말을 인용해 '북, 주한미군 무기한 주둔 양해' 라는 기사를 1면에 대서특필 했다.

해리슨은 그 때 1주일 동안 북한을 방문해 김영남(金永南)외교부장(당시), 강석주(姜錫柱)외교부 부부장, 이찬복(李贊馥)판문점 군사대표와 이례적으로 장시간 인터뷰를 하고 도쿄(東京)로 나와서 북한 당국자들이 워싱턴에 전하고 싶었던 것으로 생각되는 메시지를 중앙일보에 공개했다.

그것은 북한이 미군의 역할이 한국의 안보뿐 아니라 한반도 전체의 안전을 보장하는 쪽으로 확대되는 것을 환영하고 주한미군의 무기한 주둔을 양해한다는 것이었다.

미국은 북한으로부터 통고받은 입장변화를 한국정부와 공유하지 않았고, 90년대 들어서도 한국 정부는 미군철수가 북한의 생존전략의 기본이라는 전제에서 대북정책을 수행해 왔던 것 같다.

남북한의 정상이 마침내 한반도 안전을 위한 주한미군의 기여에 인식을 같이했다면 그 의미는 크다.

金대통령은 방송 3사와의 인터뷰에서 주한미군과 연방제와 보안법문제가 "남북관계를 철벽처럼 가로막았던 세개의 장애물" 이었는데 이것들이 모두 해소돼 긴장완화와 교류협력의 길이 열렸다고 말했다. 자화자찬(自自讚)으로 들리지만 사실에 가깝다.

金위원장은 지난달 언론사 사장들에게 북한 노동당 규약의 개정과 남한의 보안법 개정이나 폐지는 별개의 문제라고 말해 보안법 철폐가 남북화해의 전제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연방제에 관해서도 쌍방의 접근된 입장이 공동선언에 들어갔다. 金대통령의 설명대로 북한은 지난 20년 동안 중앙의 연방정부가 외교와 국방을 관장하는 연방제를 주장해 왔다.

그것은 평화공존의 중간단계를 생략하고 직접 통일하자는 비현실적인 주장이었다. 북한은 느슨한 연방제라는 표현으로 종래의 연방제를 포기했다.

이제는 남북화해를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이 해소되었는가. 남북 정상회담 이후의 북한의 행태를 보면 아직도 '철벽같은' 장애물이 있다. 북한의 성의없는 협상태도와 애매한 회담목적이다. 회의진행이 너무 멋대로다.

장관급 회담의 남한대표가 金위원장을 만난다, 못만난다로 허둥대는 모습은 꼴불견이다. 비전향 장기수가 북으로 돌아가 대대적인 환영을 받는데 북한은 국군포로와 납북자들의 존재를 부인한다.

신뢰구축의 기본이 되는 군사적인 긴장완화 문제는 남한쪽 여론에 등이 떼밀려 겨우 국방장관급 회담에 합의했지만 앞으로 회의는 많은 난관을 만날 것 같다.

세가지 장애물 해소에 만족할 수 없다. 남북회담의 목표와 방향에 관한 이정표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정표를 앞에 놓고 남에서 북으로 가는 비료와 식량과 장기수 대신 북에서는 언제, 무엇이 오는가를 점검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풀뿌리들의 남북화해 참여다. 개념적인 합의의 틀 안에서 쉬운 것부터 풀어가는 방식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회담은 최소한의 격식을 갖춰야 하고, 납북자와 국군포로 송환 같은 원초적인 인권문제는 경의선 복구나 식량지원 이상의 비중으로 다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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