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히토 천황은 과거 전쟁에 대해 반성하고 있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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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한국을 강제 병합한 지 100년을 맞아 아키히토(明仁) 천황이 양국의 우호와 친선을 위해 한국을 방문하는 것은 매우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우에다 마사아키(上田正昭·83·사진) 교토(京都)대 명예교수는 일본 고대사 연구의 최고 권위자다. 한반도 등 동아시아와의 관계 속에서 연구해 왔다. 특히 아키히토 일왕(일본에선 천황)의 ‘백제학 스승’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교토부 가메오카(龜岡)시의 그의 자택에서 만났다. 우에다 교수는 “세 차례 천황과 따로 만났는데, 천황은 나의 책을 읽는 등 백제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밝혔다. 또 “2008년 11월 교토에서 2시간 동안 저녁 식사를 했을 때는 백제 부흥의 마지막 전투인 663년의 학성 전투, 무령왕, 백제 불교의 일본 전래 등에 대해 많은 질문을 했다”고 말했다.

아키히토 일왕은 2001년 12월 자신의 생일 때 가진 기자회견에서 “간무(桓武) 천황(737~806)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462~523)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記)에 기록돼 있어 한국과의 인연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고대 일본 왕실과 한반도의 혈연 관계 가능성에 대해 일왕이 언급한 것은 처음이었다. 우에다 교수는 “2001년 발언은 준비된 자료에 있던 것이 아니라 천황이 갑자기 한 것”이라고 밝혔다. 왕실 담당 궁내청 관리들이 반대할까 우려해 아키히토 일왕이 ‘폭탄 선언’을 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우에다 교수는 1965년 발간한 책에서 한반도가 일본 왕실의 혈통과 일본 고대사에 미친 영향에 대해 지적한 적이 있다.

- 2010년은 일본이 한국을 강제 병합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일본은 과거 침략과 식민지로 조선 민족의 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줬다. 말과 이름, 생명까지 빼앗았다. 내가 한 일은 아니지만, 선배들의 잘못을 매우 미안하게 생각한다.”

- 천황의 방한 가능성은.

“천황은 평화를 매우 사랑하는 사람이다. 과거 전쟁에 대해 반성하고, 평화 헌법을 지켜야 한다는 감정을 갖고 있다. 전쟁 피해자 모두에 대한 감정도 뜨겁다. (태평양 전쟁 때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사이판과 오키나와(沖繩)에도 갔다 왔다. 그러나 천황의 방한에 대해선 일본 우익이 매우 반대하고 있다. 최종적으로는 정치권이 결론을 내릴 것이다.”

- 천황이 꼭 가겠다고 하면 가능한 것 아닌가.

“정부가 황실 예산을 결정해 황실의 행동은 정부에 달려 있다.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를 적극 설득하는 것이 천황 방한을 가능하게 하는 길이다.”

- 재일 한국인 참정권 등 아직 미제들이 많다.

“2010년은 남아 있는 문제를 풀 수 있는 찬스다. 이 시기를 잘 활용해야 한다.”

- 독도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나.

“독도 문제는 일본이 교과서에 기술할 사항이 아니다. 역사에서는 사실을 정확히 기술하는 게 중요하다. 이념에 기초해 역사를 적으면 안 된다.”

- 한·일 간 새로운 우호의 역사를 만들려면 무엇이 중요한가.

“양국 교류사를 재검토해 서로의 존재를 정확히 아는 게 우호 관계를 구축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한·일 관계에서 어두웠던 시기도 있었지만, 우호의 시간이 훨씬 길었다. 특히 일본 고대의 아스카 문화(6세기 후반~7세기 전반)는 한국과의 인연이 매우 깊다. 또 국가 간 관계 못지않게 ‘민제’(民際, 민간 관계)가 중요하다.”

가메오카=오대영 기자

◆우에다 마사아키 =교토(京都)대 명예교수. 아시아사학회 회장. 일본 고대사와 한·일 고대 교류사 연구에서 일본 최고의 권위자. 『고대 일본과 조선』 등 62권의 단독 저술과 484권의 공저가 있다. 마이니치 출판문화상, 교토시 문화공로상 등을 수상했다. 지난해는 한·일 고대사 연구, 고려미술관 개설, 다문화 공생사회 실현 노력 등의 공로가 인정돼 한국 정부가 민간 외국인에게 주는 최고훈장인 수교훈장 숭례장(崇禮章)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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