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의 유리배를 보고, 작가는 삶과 죽음을 읽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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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호 06면

‘풍경의 알고리듬’(2010), 스테인리스스틸에 아크릴 우레탄, 46x5.5 m

경기도 안산시 화랑유원지에 2006년 개관한 경기도미술관 내부에는 거대한 유리배가 있다. 설계를 맡은 이탈리아 건축가 귀도 카날리는 인근 화랑 호수의 이미지를 미술관에 끌어들이기 위해 로비에 거대한 파이프 골조와 매끄러운 유리벽을 설치했다. 배처럼 느껴지게 하기 위해서다. 그러다 보니 유리벽과 마주한 벽면이 뻘쭘해졌다. 그 벽에 ‘얼굴’을 만드는 작업이 뉴욕과 서울을 오가는 이상남(57) 작가에게 맡겨졌다.

이상남 ‘풍경의 알고리듬’, 경기도 안산 경기도미술관 상설전시, 문의 031-481-7043

“설계 도면을 끄집어 내서 상상을 시작했습니다. 건축과 회화의 관계도 생각했고요. 합리적인 건축에 대해 비합리적인 회화가 해야 할 역할이 과연 어떤 것일까.” 원과 직선으로 만든 기하학적 무늬는 언뜻 나누기 부호처럼 보인다. 작가는 원은 삶이요 직선은 죽음이라 말한다.

“삶과 죽음이 DNA 나선 구조처럼 연결되는 느낌 또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똥별 같은 느낌을 주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달리 보면 식탁 앞에 앉은 두 사람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들은 서로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을까.

가로 46m, 세로 5.5m에 이르는 공간을 채우기 위해 66개의 철판으로 나눠 작업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차량 보닛 같은 철판에 자동차용 도료를 칠하고 갈아내고 칠하고 갈아내기를 수십 차례. “서로 다른 크기의 철판을 연결하려다 보니 1㎜의 중요성을 절감했다”고 소회를 털어놓았다.

그는 “자금 부족으로 자칫 좌초될 뻔 했던 작업이 커피빈코리아의 후원으로 마무리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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