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탐구 생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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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호 10면

아빠: 요즘은 통 잠을 잘 수 없어요. 아들의 기타 소리 때문이에요. 밥 딜런을 다룬 영화를 본 후로 아들은 꿈을 가수로 바꿨어요. 그 전엔 영화감독, 그 전에는 화가였어요. 꿈이 자주 바뀌는 걸 갖고 뭐라 할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수면을 방해하는 건 일종의 범죄죠. 기타 연습은 낮에 하라고, 이웃집 항의 들어오기 전에 당장 그만두라고, 야단치고 애원하고 협박해도 소용없어요. 사랑하는 원수는 조용히 치겠다며 방문을 닫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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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역시 예술가의 길은 고독한가 봐요. 부모님은 예술을 이해할 줄 몰라요. 낮에 연습하라는데 그건 음악을 모르고 하는 소리죠. 예술적 영감은 예민하고 섬세해서 낮의 소음을 견딜 수 없어요. 저도 가족이나 이웃의 잠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최대한 조용히 연주해요. 그래도 음악적 필이 솟구치면 어쩔 수 없잖아요.

아빠: 낮 12시 아직 아들은 자고 있어요. 일요일이라도 저렇게 자는 꼴은 보기 싫어요. 애 엄마가 점심은 꼭 먹여야 한다고 깨우라고 성화예요. ‘지붕 뚫고 하이킥’을 날려도 잠든 아들을 깨울 수는 없어요.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어요.

아들: 눈을 떠요. 도저히 더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허리가 아프고 허기도 지니까요. 엄마 아빠는 다 나갔어요. 밥통에 밥이 한 개도 없어요. 이런 제기랄. 이럴 줄 알았어요. 가족은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비난을 반찬 삼아 라면을 끓여 먹어요. 다 먹은 그릇을 개수대에 그릇되게 집어넣어요. 컴퓨터를 켜고 음악 볼륨을 높여요.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전화가 와요. 학점이 나왔대요. 평점이 3.0도 안 된대요. 기분전환으로 염색이라도 해야겠어요. 지갑에는 돈이 한 개도 없어요. 이미 받은 한 달 용돈은 음반 사고 군대 가는 동기랑 술 마시느라 다 썼어요. 아빠에게 문자를 보내요. 낯간지럽지만 용돈을 타내려면 이모티콘도 날려줘야 해요. 엄마에겐 안 보내요. 욕 안 먹으면 다행이에요.

아빠: 아들이 보낸 문자를 받아요. 과제 때문에 책을 몇 권 사야 한대요. 모처럼 공부한다는 아들이 기특해서 바로 송금해줘요. 기분이 흐뭇해요. 물론 눈웃음 이모티콘이 붙은 “아빠 사랑해요”라는 문자 때문이에요. 회신은 “사내 녀석이 징그럽게”라고 했지만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아요.

아들: 집에 오니 엄마가 기겁해요. 이중인격자 같아요. 평소에는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것처럼 말하면서 아들에게만 예외인가 봐요. 샤워는 오래 해요. 뜨거운 물을 맘껏 써요. 맘껏 쓸 수 있는 게 물밖에 없는 것 같아요. 샤워기를 틀어놓고 한참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기면 온갖 근심 걱정이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죠. 그런 기분을 즐기는 것도 잠시예요. 바깥에서 엄마가 “물 좀 아껴라”고 지르는 비명이 들려요. 물을 더 세게 틀어요.

아빠: 모처럼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저녁 식사를 해요. 아들은 밥 먹을 때 엄청 시끄럽게 소리를 내며 먹어요. 식사예절은 정말 중요해요. 아들이 알아듣게 조용히 타일러요.

아들: 아빤 참 배울 게 많은 분이에요. 식사하면서 아빠가 내는 소리가 너무 커서 한마디하고 싶었지만 괜히 분위기 망칠 것 같아 간신히 참았는데. 앞으론 참지 말아야겠어요.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대한민국 유부남헌장』과 『남편생태보고서』책을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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