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군부, 방송 장악 위해 강제 폐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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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방송-. 동양방송은 이제 무거운 짐을 풀어놓고 조용히 잠들려고 합니다. 동양방송의 17년 역사가 막을…내리고…있…습니다(울먹임). 오늘 자정을 기해 여러분 곁을 떠나려 합니다. 이제 정말 헤어질 시간입니다. 남은 5분이…남은 5분이 너무 야속합니다…. (울먹임).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히! 감사합니다. 여러분…이제 3분 남았습니다. 여기는 HLKC 639킬로헤르츠 동양…방…송…입니다.”

1980년 11월 30일 자정. 동양방송(TBC) 라디오 ‘밤을 잊은 그대에게’의 진행자 황인용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울먹임의 연속이었다. 같은 날 오후 8시45분부터 방영된 TBC TV의 고별 특집방송도 침울함 그 자체였다. TBC가 키운 스타 이은하는 ‘TBC 고별방송’ 프로그램에서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이란 노래를 부르다 흐느끼고 말았다. ‘대본 내용 그대로, 비장하지 않게, 우는 사람이 없도록 할 것’이라는 신군부 측의 주문을 어긴 것이다. 이 괘씸죄로 그는 3개월간 방송 출연이 금지됐다. 한국 방송의 한 획을 그은 TBC는 이렇게 민주사회에선 상상할 수 없는 탄압과 폭거, 비통함 속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TBC는 1964년 한국 최초로 설립된 민영 TV 방송사다. TBC는 한국 방송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며 20년 가까이 국민의 눈과 귀, 입 역할을 했다. 일일 연속극이란 장르를 정착시킨 드라마 ‘아씨’, 오락물의 새 지평을 연 ‘쇼쇼쇼’, 방송되는 날마다 거리를 한산하게 만들었던 외화 ‘뿌리’…. 70년 3월 2일부터 71년 1월 9일까지 방송된 ‘아씨’의 경우 70%대로 추산되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다. ‘아씨’ 시작 전 “문단속을 잘해 도둑을 조심하고 수도꼭지가 꼭 잠겨 있는지 다시 한번 점검한 뒤 프로그램을 시청해 주십시오”란 이색 안내방송이 나간 것도 유례없는 일이었다. TV가 흔치 않던 시절, 동네 사람들이 이 집 저 집 몰려가서 ‘아씨’를 보던 데서 비롯된 웃지 못할 일이었다.

TBC는 속성상 민영방송이면서도 방송의 공영성을 포기하지 않았다. 소외받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장수만세’나 휴먼 다큐멘터리로 제작된 ‘인간만세’ 등 수많은 프로그램을 통해 공익적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TBC는 80년 신군부 등장 이후 주 타깃이 된다. 5공 정부는 신문·방송의 겸영을 금지하고 방송의 공영성을 높인다는 명분을 내걸어 11월 30일 TBC를 강제로 폐방시키고 KBS에 흡수시켰다. 그러나 방송의 공영성이란 명분은 허울뿐이었다. 수원대 언론정보학과 김광옥 명예교수는 “TBC는 사회적 영향력도 크고 국민적 인기도 높았기 때문에 신군부가 혁명의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수단으로 택한 듯하다”며 “방송 공영화란 명분은 방송 장악 차원에 다름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날 진실화해위원회가 TBC 강제 폐방의 역사적 성격을 분명하게 규정했다. 진실화해위는 “신군부는 방송 공영화, 방송·신문의 재벌 운영 금지를 명분으로 하였으나 실은 장기 집권을 위해 신군부에 우호적인 성향의 방송·신문을 육성하자는 게 목적”이었다고 결론 내렸다. TBC는 방송 장악이란 음험한 시나리오에 따라 부당하고 억울한 피해를 받았음이 분명하게 입증된 셈이다.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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