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창업자들 "CEO 넘기고, CTO로 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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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전문경영인을 영입해 경영을 맡기고 자신은 한발 물러나 기술개발에 전념하는 벤처기업가가 늘고 있다.

개인정보관리 소프트웨어인 하얀종이로 유명한 ㈜엔드리스레인의 이호찬 전사장은 올해 초 정재욱 이사를 최고경영자(CEO)에 선임하고 자신은 전략기획이사로 내려앉았다.

이 전사장은 최근에는 엔드리스레인이 합작설립한 '이누카' 의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새로운 도전에 들어갔다.

대기오염 측정장비 생산업체인 라이다텍도 창업주인 박원규 사장의 업무를 기술개발 담당(CTO)에 국한시키고, 대신 청와대 환경반장을 역임한 김승우 박사를 CEO로 영입해 판매와 조직 관리를 모두 맡겼다.

지문인식 보안기술을 개발한 '패스21' 도 같은 길을 밟았다. 창업주인 윤태식 전사장이 지난 4월 사내의 연구조직인 생체정보기술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신 이규성 전 재정경제부 장관과 이정명 전 지트로닉스 상무를 각각 회장.사장으로 영입해 경영을 맡겼다.

이런 흐름은 벤처기업의 규모가 커지고 업무영역의 분화에 따라 경영의 전문성이 강조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특히 엔지니어 출신 벤처경영자일수록 인사ㆍ회계.마케팅을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자신은 기술개발에 전념하는 경우가 두드러지고 있다.

나모인터랙티브의 박흥호 사장은 2년 전 "능력있는 사람에게 경영권을 넘기고 기술 개발만 하고 싶다" 고 말했다.

그는 올해 초 그 약속을 지켰다. 경인양행의 김흥준 사장을 경영.마케팅부문 CEO로 영입하면서 자신은 CTO로 비켜난 것이다.

박사장은 "회사 규모가 커지고, 해외시장 진출이 확대되면서 해외사업 경험이 풍부한 김사장을 몇 달 동안 조른 끝에 CEO로 초빙했다" 고 말했다.

씽크프리닷컴의 강태진 사장도 해외 시장 공략을 위해 투톱 시스템을 선택했다. 어떤 컴퓨터 운영체제에서도 쓸 수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에 나선 이 회사는 처음부터 세계시장을 겨냥했다.

강사장은 20년 가까이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마케팅을 해온 이경훈 사장을 만나 그에게 CEO자리를 넘겨주고 본사도 아예 미국으로 옮겼다.

강사장은 "내가 모든 걸 움켜쥐고 가는 구멍가게보다 나보다 능력 있는 사람과 함께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게 더 중요하다" 고 말했다.

이에 힘입어 씽크프리닷컴은 지난해 9월 한국 소프트웨어 회사로는 처음으로 미국 벤처캐피털인 '프리즘' 등에서 5백40만달러의 투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인터넷 솔루션 전문업체인 인디시스템 김창곤 사장도 지난 6월 한국오라클의 김충언씨를 공동대표로 영입한 뒤 자신은 인터넷 솔루션 개발에만 매달리고 있다.

김창곤 사장은 "새로 영입한 CEO는 98년부터 인터넷 비즈니스 컨설턴트로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가한 인물" 이라며 "인터넷 솔루션업체에 머무르지 않고 종합 인터넷 비즈니스 업체로 탈바꿈하기 위해 기술개발을 제외한 경영 전반을 모두 맡겼다" 고 말했다.

한편 창업자가 CTO로 비켜난 나모인터랙티브와 씽크프리닷컴은 CEO로 영입한 전문 경영인에게 대주주 자리도 함께 넘겨주었다.

원낙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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