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2004] 53 : 37로 "케리가 잘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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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통령 선거를 30여일 남겨두고 치러진 첫번째 대통령 후보 TV 토론회에서는 민주당 존 케리 후보가 공화당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압도했다고 미 언론이 일제히 보도했다. 토론 스타일과 내용 모두에서 케리가 우세했다는 평가다. 토론이 끝난 직후 여론조사기관 갤럽의 조사에서 53%는 케리가, 37%는 부시가 잘했다고 응답했다. 또 토론 이후 '케리가 더 좋아졌다'는 응답(46%)이 '더 싫어졌다'(13%)는 응답보다 세배 이상 많았다. 반면에 '부시가 더 좋아졌다'는 응답은 21%에 불과했고 '더 싫어졌다'는 유권자도 17%나 됐다.

미 대통령 선거의 정설은 후보 간의 TV 토론이 대세를 결정짓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워낙 박빙인 데다 첫번째 토론에 미국 유권자 6000만명 가까이가 시청했기 때문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평론가인 데이빗 거겐은 CNN에서 "케리는 이번 TV토론을 통해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줬다"면서 "뒤처져 있던 케리 후보가 당장에 부시 대통령을 따라잡진 못하겠지만 싸움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9월 한달 동안 계속됐던 부시의 독주에 제동이 걸린 셈이다.

이날 토론의 최대 쟁점은 이라크 전쟁이었다.

두 후보 모두 상대방을 공격할 강력한 무기를 갖고 나왔다. 부시 대통령은 케리 후보가 이라크전과 관련, 입장을 여러 번 바꿨다는 사실을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졌다. "테러와의 전쟁처럼 중대한 과제를 두고 입장이 왔다갔다 하면 어떻게 제대로 일을 수행해 낼 수 있겠느냐"고 공격했다. 케리 후보는 "이라크전은 총체적 실패고, 부시 대통령은 아무런 계획도 없이 무작정 전쟁을 치렀다"고 몰아세웠다. 모두 예상됐던 대목이다.

하지만 토론 분위기를 주도한 건 케리였다. 부시 대통령은 케리가 공격하면 그걸 해명하느라 주어진 시간의 대부분을 허비했다. 그동안 선거 유세 과정에서는 부시 대통령이 인파이터 스타일이고 케리 후보는 주변을 빙빙 도는 아웃복싱 타입이었는데 직접 맞붙는 토론에선 정반대가 된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말솜씨가 없다"는 걸 최대한 홍보해 시청자의 기대치를 낮춘 뒤 토론에선 핵심 쟁점 몇 가지만 반복해 강력한 인상을 심는 수법을 사용해왔다. 하지만 이번엔 소용이 없었다.

부시 대통령에게 유리할 것이 별로 없는 이라크전을 중심으로 토론이 진행된 것도 케리 후보의 선전을 가능케 했던 요소로 보인다. 부시 참모들은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8일과 13일에 있을 제2차, 3차 토론회에서는 더 큰 격돌이 벌어질 전망이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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