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이산상봉] 평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반세기 만에 남측 이산가족 방문단을 맞은 평양도 눈물바다를 이뤘다.

'남의 아들과 북의 오마니' 는 부둥켜안은 채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마냥 흘러내리는 눈물이 지난 50년간의 속절없는 세월을 대신하고 있었다.

○…남측 이산가족 방문단이 '집체(집단)상봉' 을 시작한 15일 오후 5시 평양 고려호텔. 흐느낌과 함께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애절한 사연 때문에 북측 안내원들은 물론 취재진조차 눈시울을 붉혔다.

1.4 후퇴 때 처자식을 북에 두고 월남했던 김일선(81)씨는 아내 오상현(77)씨가 金씨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여보, 그동안 속절없이 살았시오. 우린 이제 어찌합니까" 라며 울부짖자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 "아버님 어머님! 제가 광산 김씨 문중의 대를 끊지 않았으니 걱정말고 편히 눈을 감으십시오. " 5대 독자이면서 6.25 전쟁 당시 인민군에 징집됐다 붙잡힌 뒤 반공포로로 남한에 남게 된 김장수(68)씨는 누나 봉래(72)씨와 여동생 학실(64)씨로부터 어머님이 작고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끝내 오열을 터뜨렸다.

金씨는 "3년 뒤 꼭 돌아오겠다고 홀어머니에게 약속했는데 약속을 지키지 못해 천추의 한이 됐다" 면서 "하지만 딸만 다섯을 나은 뒤 아들을 낳아 가문을 잇게 됐다" 고 누이들에게 설명.

○…황해도 사리원 출신의 양영애(70)씨는 남동생 후열씨를 만나 "엄마가 평생 너를 가슴에 묻고 돌아가셨다" 고 통곡을 하다 실신, 북측 안내원들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1.4후퇴 당시 눈보라 때문에 외아들을 북에 두고 온 남측 방문단 중 최고령자인 김정호(91)씨는 외동 아들 덕순씨를 만나자 얼굴을 연신 쓰다듬으며 눈물을 흘렸다.

金씨는 어리기만 했던 아들이 어느덧 주름이 깊게 팬 모습을 보고 "이제 너도 늙었구나" 하며 이산의 한을 되새겼다.

○…약산 진달래로 유명한 평안북도 영변군이 고향인 채성신(73)씨는 아홉살때 헤어진 동생 정열(62)씨를 만나자 "얼굴을 몰라볼까 걱정했는데 눈매가 아버지를 꼭 닮아 첫눈에 알아봤다. 역시 피와 씨는 못 속인다" 며 취재기자에게 사진 촬영을 부탁.

○…고려호텔 상봉장에는 재일 조총련 영화제작팀이 눈물의 상봉장면을 화면에 담느라 분주한 모습. 영화제작팀의 김형태(40)씨는 "상봉 취재를 위해 8월 초부터 방북했다" 면서 "조총련에서도 고향방문을 하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아 영화를 만들게 됐다" 고 설명.

한편 집단상봉을 끝낸 남측 방문단은 오후 8시쯤 인민문화궁전에서 장재언 북한적십자회 위원장이 주최한 만찬에 참석했다.

평양〓공동취재단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