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은 개화 추진한 개혁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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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1997년 논문 '고종황제의 암약설(暗弱說) 비판' 을 통해 '고종 다시 보기' 를 시도했던 서울대 국사학과 이태진(57) 교수가 그동안의 연구성과를 집성한 단행본 '고종시대의 재조명' (태학사)을 펴낸다.

12일 출간될 이 책에는 역사학계의 이목을 끌 만한 새로운 사실(史實)과 해석이 상당수 들어 있다.

우선 그동안 통설로 굳어져 내려온 '고종=유약한 군주' 라는 등식을 전면 부정하며 고종을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의 개화를 추구한 개명군주(開明君主)로 평가했다.

1884년 갑신정변과 동학혁명 당시 청군(淸軍)의 출병 등에 대해서도 통설과 다른 해석을 시도했다.

우선 이교수는 '고종 암약론(暗弱論)' 은 일제가 고종시대의 근대화 성과를 매장하기 위해 조작한 허위임을 지적한다.

일제는 대한제국이 1897년 광무개혁을 통해 자력 근대화의 가능성을 강하게 보이자 이에 위기감을 느껴 고종의 무능설을 유포하기 시작했다는 것. 이후 1907년 헤이그특사사건을 구실로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면서 이는 확고한 사실로 굳어졌다.

이 과정에서 이 교수가 광무개혁을 자력 근대화의 시발점으로 본 점도 눈길이 가는 대목이다. 이 점에 대해 국사학계는 부정론이 대세다. 전 연세대 사학과 김용섭 교수가 이교수의 입장을 뒷받침하는 정도가 고작이다.

구체적인 사례로 들어가면 이교수의 '왜곡 허물기' 는 강도를 더한다. 제1부 '편견과 오류 비판' 에서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른 대표적인 사건은 개화당이 사대당인 민씨 일파를 공격한 갑신정변.

이교수는 김옥균 등 갑신정변의 주인공들은 개화의 선각자일지 모르나, 정변 자체는 무모하게 추진돼 결과적으로 국가에 큰 짐을 지운 해프닝이라고 '격하' 했다.

그 근거로 이교수는 주도세력인 김옥균 일파가 '일사래위(日使來衛)' , 즉 '일본공사는 궁궐로 들어와 국왕을 호위하라' 는 고종의 어서(御書)를 위조한 점을 밝혀냈다. 과정 자체가 이미 반개혁적이었다는 이야기다.

또한 이교수는 1894년 동학혁명 당시 청군의 출병은 농민군의 봉기에 겁을 먹은 고종이 요청한 것이 아니라 반청(反淸)감정을 무력화하기 위한 위안스카이(袁世凱)의 내정간섭 차원에서 이뤄졌음을 논증했다.

민권운동의 효시로 알려진 독립협회의 관민공동회와 만민공동회에 대해서도 이교수는 일본공사관이 협회 지도부의 일부 친일분자들을 사주해 일으킨 소요라고 주장했다.

갑신정변과 독립협회와 관련한 이씨의 이같은 주장은 능동적인 개혁과 독립운동의 큰 줄기로 해석한 고려대 강만길 명예교수와 서울대 사회학과 신용하 교수 등 학계 중진들의 기존 학설과 크게 배치하는 부분이어서 격론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교수는 제2부 '근대화의 현장' 에서 고종의 치적에 대한 새로운 사실도 많이 발굴.제시했다. 1882~83년 태극기 제정과정을 주도한 일, 근대화에 필요한 지식과 정보 습득을 위해 중국에서 3만여점의 책을 구입한 일, 1896년 아관파천이후 대한제국 출범을 앞두고 서울의 근대적 도시개조사업을 계획.추진한 일 등을 예로 들었다.

또한 일본 공사관의 공작활동을 차단하기 위해 황제가 '익문사(益聞社)' 란 비밀 정보기관을 창설.운영한 사실도 밝혔다.

이미 '한국사회사연구' '일본의 대한제국 강점' 등 5권의 단행본을 출간한 이교수는 "이 책을 통해 고종시대를 파악하는 새로운 틀을 제시하고 싶었다" 며 "양요.쇄국.개항.갑신정변.아관파천 등 일본 침략주의의 시혜론적 관점에서 서술된 근대사의 흐름을 이제는 우리의 입장에서 재정립해야 할 때다" 고 말했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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