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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창훈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19) 검어(黔魚·우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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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머리·입·눈이 모두 크고 몸이 둥글다. 비늘은 잘고 등이 검다. 살은 약간 단단하고 사철 볼 수 있다. 언제나 돌 틈에서 살기에 멀리 헤엄쳐 가지 않는다.

내가 낚시꾼의 집념을 맨 처음 본 게 여덟 살 때였다. 친구 형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 낚싯대는 뒷산 대나무로 만든, 두 팔 길이 정도였다. 바닷가를 어슬렁거리던 나는 바위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봤다. 해가 떨어지자 사람들은 하나 둘 돌아갔다. 그 형은 아예 무릎 깊이까지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 낚시를 계속했다.

이미 여러 마리의 고기를 낚아냈는데도 만족하지 못하고 그는 낚싯대 끝만 노려보고 있었다. 이제 곧 어두워지겠다 싶었을 때 뭐라고 소리를 지르며 낚싯대를 잡아챘는데 그만 우지끈 부러지고 말았다. 그는 앞뒤 볼 것 없이 물로 뛰어들었고 필사적으로 첨벙거리면서 낚싯줄을 팔에 둘둘 감았다. 마침내 보듬다시피 잡아올린 것은 어른 팔뚝만 한 우럭이었다.

나는 탄성을 질렀고, 그는 해초 더미 잔뜩 붙인 채 헤벌쭉 웃었다. 그 형은 손가락이 심하게 굽은 불편한 몸이었으며 고작해야 5학년이었다. 그가 낚시에 매달린 이유는 그 집에서 유일하게 동물성 단백질을 구해오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친구에게 가족은 형과 늙은 할머니 단 둘 뿐이었다. 아버지는 목숨을 버렸고, 어머니는 가족을 버리고 떠나버렸던 것이다.

나는 그 장면이 잊히지 않아 쉬 잠이 들지 않았다. 다음날 가보니 세 식구가 머리를 맞대고 우럭 꼬리뼈까지 쭉쭉 빨아먹고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잡은 생선과 고구마와 간혹 나오는 밀가루 배급으로만 살았다. 그 집 텃밭에는 우럭 뼈와 고구마 껍질이 수북했다.

형의 그런 모습은 날마다 되풀이되었다. 바닷가로 나가 이면우 시인의 시구처럼 ‘그게 무어든 한 움큼씩은 꼭 움켜쥐고’ 돌아왔다. 그에 비해 내 친구는 말썽만 부리는 개구쟁이였다. 무조건 뛰었고, 같이 노는 것보다는 울리는 것을 택했으며, 말하는 것보다는 악쓰는 것을 좋아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이 그렇게 만들어버린 거였다. 그는 커갈수록 눈의 열기가 더욱 뜨거워지고, 충동의 위험도 높아갔다. 그러면서도 쓸쓸한 기운이 늘 주위를 맴돌았다. 그리고 소식이 끊겼다.

우럭은 흔한 어종에 속한다. 낚시 좀 다닌 사람은 여러 마리 낚아보았을 것이다. 서남해안에서는 선상 우럭 낚시가 있다. 낚싯배로 침선이나 어초 포인트를 찾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거, 돈 제법 든다. 낚시 자체는 어려울 것 없는데 몇 시간씩 배 타는 것도 일이다.

이때 만만한 게 이른바 구멍치기다. 방파제에 가면 테트라포드가 있다. 파도를 분산시키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으로 삼발이, 또는 호바라고도 부른다. 이 테트라포드 사이 구멍에서 의외로 우럭이 잘 문다.

보통 청갯지렁이나 크릴을 쓰는데 살아있는 미꾸라지를 달면 효과가 좋다. 고등어나 전갱이 살을 쓰기도 한다. 고패질을 해주어 미끼가 살아 있는 것처럼 하는 게 중요하다. 고패질이란 채비를 조금씩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구멍치기의 맹점은 밑 걸림이 심하다는 것이다. 잘 걸리니까 채비는 아주 간단하게 한다. 봉돌과 한 뼘 정도의 목줄, 낚싯바늘이면 된다. 운이 좋으면 1㎏짜리도 나온다.

가능하다면 가두리양식장에서 낚시를 해보는 것도 재미다. 물론 고기 키우는 칸에 넣어서 낚으라는 말은 아니다. 늘 사료를 주기 때문에 주변에 고기가 잘 모인다. 가두리를 탈출한 우럭도 제법 돌아다닌다.

우럭에 대한 음식은 따로 말할 필요 없겠다. 우럭 회나 매운탕 한 번 안 먹어본 사람 없을 터이니 말이다. 섬에서는 꾸덕꾸덕 말려 구워먹기도 한다.

아, 친구.

내가 그 친구를 다시 만난 것은 오랜만에 열린 동창회에서였다. 그는 긴 길을 돌아왔다. 동원산업 오징어배 사롱보이로 오대양 돌아다니다가 조리장이 되었고, 근자에는 선박 기계 수리·유지하는 외국계 회사 엔지니어로 근무하며 역시나 전 세계를 제집 작은방처럼 돌아다니고 있다는 게 그동안의 이력이었다. 그는 변해 있었다. 열기로 번들거렸던 눈은 수평선을 닮아 있었고, 행동거지와 말투가 부드러워져 있었다. 바람의 세월을 보내면서 아름답게 삭은 것이다.

형의 안부를 물었고 삶이 곤궁한 데다 그나마 자주 못 본다는 대답을 들었다. 나는 오래전에 보았던 어린 가장의 집념 어린 낚시에 대해 말했다. 한동안 듣던 그는 눈 들어 사십 년 저쪽을 물끄러미 바라다보았다. 그리고 조만간 형에게 식사대접을 하겠다고 답을 했다.

소설가 한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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