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홍길, 히말라야 14좌 등정 성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여기는 정상. 이제는 더 오를 곳이 없다. "

31일 오전 10시15분(한국시간) 세계에서 두번째로 높은 K2(해발 8천6백11m) 정상을 밟은 산악인 엄홍길(嚴弘吉.40.사진)씨의 목소리가 무전기를 통해 떨려 나왔다.

마침내 그가 히말라야 8천m 고봉 14곳을 모두 정복하는 순간이었다.

중앙일보가 창간 35주년 기념사업으로 조인스닷컴(http://www.joins.com) 등과 공동 후원하는 K2한국원정대의 嚴등반대장이 세계 일곱번째로 14좌를 등정한 산악인으로 우뚝 섰다.

1988년 가을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시작으로 올해 5월 칸첸중가(8천5백86m)까지 13개 봉에 올랐던 嚴대장으로선 12년만에 이룬 쾌거다.

◇ 정상 도전=오전 4시 셰르파 한명과 함께 캠프Ⅳ(8천m)를 출발한 嚴대장의 완등 길을 평소 심술궂던 날씨도 가로 막지 않았다.

쾌청한 날씨 속에 6시간여만에 정상에 오른 嚴대장은 뒤이어 등정한 朴무택(31.계명대OB)대원과 감격의 순간을 나눴다. 嚴대장에게 이날은 지난해 67세로 타계한 아버지의 첫번째 기일이기도 했다.

유한규(46.코오롱스포츠)원정대장과 모상현(27.청암산우회)대원은 레귤레이터(호흡조절기)가 고장난 한왕룡(35.우석대OB)대원과 함께 오후 1시45분 정상에 합류했다.

정상에서 1시간여 동안 기념촬영을 마친 嚴대장은 朴대원과 함께 오전 11시20분 하산을 시작했다. 등정대원들은 캠프Ⅲ에서 하룻밤을 지낸 뒤 1일 베이스 캠프로 철수한다. 등정대는 오는 20일을 전후해 귀국한다.

◇ 히말라야 14좌 완등=인간이 8천m 이상 봉우리를 밟은 것은 1951년 모리스 에르조그(프랑스)가 안나푸르나(8천91m) 등정에 성공한 것이 처음이었다.

세계 각국이 8천m 고봉 초등 레이스에 들어가면서 히말라야는 국력 과시장이 됐다. 64년 중국 원정대가 시샤팡마에 오른 것을 끝으로 초등 레이스가 끝나자 세계 산악계는 다시 8천m급 완등과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 경쟁에 들어갔다.

14좌를 완등한 산악인은 라인홀트 메스너(오스트리아.1986)를 비롯해 예지 쿠쿠츠카(폴란드.1987).에라르 로레탕(스위스.1995).카를로스 카르솔리오(멕시코).크시슈토프 비엘레츠키(폴란드.이상 1996).후아니토 오아라사발(스페인.1999) 등 6명이며, 아시아 산악인으로서는 嚴씨가 최초다.

◇ 嚴홍길은 누구인가=1m68㎝, 60㎏의 작은 체구지만 체력과 폐활량이 뛰어난 嚴씨는 '작은 탱크' 로 불린다.

25세 때인 85년 에베레스트 첫 원정과 86년 두번째 원정에서 등정에 실패했으나 88년 세계 최고봉에 오르면서 히말라야 도전사를 시작했다.

고비도 많았다. 98년 안나푸르나 등정 당시 추락하는 셰르파를 구하려다 다리가 부러져 2박3일 동안 '네발로 기어서' 베이스 캠프로 귀환했다.

낭가파르바트 원정 때는 동상에 걸려 두 발가락을 잘라냈다. 지난해 안나푸르나와 칸첸중가 원정에서는 여성 산악인 池현옥씨와 KBS 현명근 대원을 잃는 아픔도 겪었다.

지난 12년동안 히말라야에서 살다시피한 嚴씨는 97년 이순래(30)씨와 결혼, 1남1녀를 두고 있다.

K2=김세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