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下. 30대 한국 떠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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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국을 떠나는 30대들은 다양하다.

MBA(경영대학원)나 로스쿨(법과대학원)을 졸업한 뒤 현지에서 취업하거나 해외지사 근무를 마친 뒤 눌러앉는 경우도 늘고 있다.

정보통신 등 첨단기술분야 연구개발인력에 대한 해외업체들의 스카우트 제의도 많아지고 있다. 이들도 한국을 떠난다는 점에선 이민이나 마찬가지지만 통계엔 잡히지 않는다.

공통점은 이들 30대가 높은 학력과 전문분야의 실력을 무기로 현지의 전문직종에 당당히 도전한다는 사실이다.

이민시장의 구조도 바뀌고 있다.

올해 상반기 외교통상부에 잡힌 해외이민자(7천1백25명)중 취업이민(3천6백23명)이 절반을 넘은 반면 뭉칫돈을 들고 가는 투자이민이나 친인척 초청으로 이뤄지는 연고이민은 20%대에 머물렀다.

전체이민 중 취업이민의 비율은 97, 98, 99년 지난 3년간 26.3%, 27.2%, 41.6%로 증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40대만 되면 새로운 도전을 주저하는 경향이 있어 취업이민은 30대가 주도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극복하기 힘든 언어장벽과 비싼 물가 등 '복병' 에 부닥치는 이민 실패사례 역시 적지 않다.

◇ '엘리트' 에 도전한다〓국내 대기업 연구소에서 인정받는 엔지니어였던 朴모(35)씨는 현재 미국 중부권 A대학 MBA 과정을 2년째 다니고 있다. 朴씨는 미국인 임원들과 서너시간씩의 취업인터뷰를 해가며 미국의 취업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지난해 컬럼비아대 로스쿨을 졸업한 金모(35)씨는 미국내 경제인단체 자문변호사로 채용됐다. 이들처럼 졸업뒤 현지에서 일자리를 찾아 승부를 걸겠다는 30대 유학생들이 많아지고 있다.

대기업이나 금융기관의 30대 해외지사 주재원들 사이에 귀국을 거부하고 영구정착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일종의 '한국 기피' 현상이다. 그러나 교민 상대의 식당이나 세탁소 등 작은 점포를 꾸렸던 예전과 달리 현지 회사에 재취업하고 있는 것은 달라진 모습이다.

대기업 계열 금융회사 뉴욕지사에서 6년간 근무했던 李모(38)씨는 지난 5월 미국 부동산 회사로 옮겼다.

회사가 영주권 발급을 책임지고, 성과에 따라 연봉 10만달러까지 보장한다는 괜찮은 조건까지 얻어냈다.

뉴욕 교민회 한 관계자는 "해외 주재원들의 60~70%는 임기 후 현지에 눌러앉을 생각을 갖고 있다" '며 "나중에 밀려나는 한이 있더라도 미국 회사에 들어가 현지인들과 같은 자격으로 겨뤄보자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고 말했다.

'기술 해외유출' 우려를 낳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현대전자와 LG반도체 빅딜, 국책연구기관의 구조조정 등으로 30대 연구인력들이 해외로 빠져나간 일들이 이 경우다.

◇ 제3세계도 마다않는다〓이민 대상지가 다양해지는 것도 최근의 현상이다.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근무 중인 대기업 종합상사 金모(37)과장은 이달 초 귀국명령을 받자 사표를 낸 뒤 중국에 진출한 국내 인터넷 업체로 옮겼다.

"지사근무 중 알게 된 중국 인맥을 활용하면 차라리 중국이 훨씬 기회가 많다" 는 것이 金과장의 선택이유다.

국내 종합상사들의 홍콩 지사에선 최근 2년새 10여명이 귀국명령을 거부하고 홍콩에 정착했다.

러시아 모스크바엔 대기업 상사 주재원으로 근무하다 최근 2~3년새 사표를 던진 30대 사장 5~6명이 정기적으로 만나 사업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金모(37)씨는 "한국에 들어갈 생각을 해봤지만 관료주의로 가득찬 조직에 갇혀 기회를 놓치기 싫어 나왔다" 면서 "러시아 사회가 불안한 측면이 있지만 그만큼 사업기회도 많다" 고 말했다.

중국.러시아는 물론 아프리카나 아시아 등 제3세계에 정착하는 30대도 늘고 있다.

◇ 난관도 있다〓 "여전히 언어가 문제다. 의사소통은 되지만 실력을 1백% 발휘할 수 없다. 국내에서 하던 창의적인 개발은 꿈도 못꾼다."

단기취업비자(H1B)로 미국에서 일하고 있는 전산엔지니어의 하소연이다. 한국이주공사 임삼렬 사장은 "캐나다 독립이민자 등 미주권 이민자들이 취업에서 가장 애로를 느끼는 문제가 언어" 라고 말했다.

'삶의 질' 이 기대에 못미치는 경우도 있다. 미국 이민생활 6년째인 李모(39)씨는 "비싼 임대료를 내다보면 결국 한국에 있는 부모에게 손을 벌리게 된다" 고 푸념했다.

캐나다 독립이민자인 金모(37)씨는 "은행에서 25년 상환조건으로 받은 주택담보 대출금을 갚아나가다 보니 저축은 생각도 못하고 있다" 며 "3억원을 들고 왔지만 기본생활 유지하기도 빠듯하다" 고 말했다.

30대의 자신감이 실패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대기업 지사 과장 출신인 崔모(37)씨는 중국 톈진(天津)에서 지난해 가라오케를 열었다가 현지 폭력조직에 점포를 빼앗겼다고 호소하고 있다. 신흥시장일수록 현지인들의 교분을 과신하고 사업을 벌였다가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

기획취재팀〓이상렬.서승욱.조민근 기자

제보 751-5222.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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