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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과 전후좌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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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예전 대만에 처음 갔을 때 일이다. 건물 계단을 오를 때마다 내가 사람들의 앞길을 막았다. 나는 좌측통행을 하는데, 그들은 우측통행을 했다. 적응하는 데 시일이 꽤 걸렸다. 일본에 가니까 다시 좌측통행을 했다. 하지만 일본은 운전석이 우리와 반대였다. 우회전을 할 줄 알았는데 느닷없이 좌회전을 해 순간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운전석이 우리처럼 왼쪽인 대만은 우측통행을 하고, 운전석이 오른쪽인 일본은 좌측통행을 한다. 그런데 우리는 운전석이 왼쪽인데 좌측통행을 한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 걸까? 아니 이것이 옳고 그름의 문제가 될 수 있을까? 그러다 보니 언제부터 우리나라에서 좌측통행이 규칙으로 굳어졌는지 궁금해졌다.

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도버해협이 개통됐을 때 운전석의 위치가 반대인 두 나라의 주행 방향이 달라 문제가 됐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쪽에서는 오른쪽이 바른 방향인데, 저쪽에서는 왼쪽이 바른 방향이라서 생긴 문제였다. 서로 자기 것만 고집했다면 해협은 정면충돌 사고의 처리장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몇해 전부터 나는 학교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혼란을 느낀다. 예전과 달리 복도 좌측으로 올라가면 학생들은 우측으로 내려와 어느새 내 앞을 막아선다. 내가 잘못 했나 싶어 방향을 따져보면 나는 분명히 왼쪽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처음엔 복도가 좁아서 그러려니 했다. 찬찬히 보니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전철역 바닥에 어지럽게 화살표로 좌측통행을 강조해 놓은 것만 봐도 좌측통행이 자발적으로는 잘 지켜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전철역에서 올라가고 내려가는 사람이 좌우 중앙에서 온통 뒤엉키는 모습은 지금도 매일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무너지는 좌측통행은 어찌 보면 우리 사회의 가치관의 혼돈을 상징하는 것 같다. 아니 지금의 내 생각은 나의 좌측통행이 과연 올바른 방향인지조차 헷갈린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참 피곤한 일이다. 내 잘못으로 남을 성가시게 하는 게 싫다. 하지만 좌측통행이 옳은 줄 알고 올라가는데 왜 남의 앞길을 막느냐며 멀뚱멀뚱 서서 길을 열어주지 않는 젊은이를 보는 것도 영 마땅치 않다. 내 상식에 맞추어 행동하면 몰상식하다고 한다. 지금까지 이것이 옳다고 여기며 살아왔는데, 어느 순간 틀렸다고 한다. 여기서는 당연한 일이 저기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된다. 그러면 안 된다고 믿어왔는데,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윽박지른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몰라 복도를 오를 때마다 눈치를 본다.

청나라 장조(張潮)는 '유몽영(幽夢影)'에서 이렇게 말했다. "동서남북은 일정한 방위지만, 전후좌우는 일정함이 없는 방위이다(南北東西 一定之位也, 前後左右 無定之位也)." 상쾌한 말이다. 해는 늘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 북극성은 언제나 북쪽 하늘에 빛난다. 여기서도 그렇고 저기서도 그렇다. 언제나 그렇고, 영원히 그렇다. 이런 것이 진리다.

하지만 전후좌우는 그렇지가 않다. 앞을 볼 때 좌우는, 돌아서면 어느새 반대로 된다. 내게는 앞인데 앞사람에게는 뒤가 된다. 거울 속의 나는 방향이 반대다. 전후좌우는 내가 서 있는 방향에 따라 수시로 위치를 바꾼다. 상대적이고 가변적이다. 문제는 전후좌우를 동서남북으로 생각할 때 생겨난다. 동서남북을 전후좌우로 여겨도 곤란하다. 그렇다면 나는 혹시 전후좌우를 동서남북으로 알고 살아오지는 않았을까? 반대로 동서남북을 전후좌우로 착각한 적은 없었던 걸까?

연나라 소년이 조나라 사람의 씩씩한 걸음걸이를 배우려고 한단 땅으로 갔다. 열심히 배웠지만 익히지 못했다. 할 수 없이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니 이번에는 본래의 제 걸음걸이를 잊고 말았다. 그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해 엉금엉금 기어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른바 한단학보(邯鄲學步)의 고사가 자꾸 생각나는 요즘이다.

정 민 한양대 교수.국문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