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로버트박, 두만강 건너 무단 입북 … 북한의 선택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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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무단 입북한 로버트 박씨가 방중하기 직전인 22일 서울에서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한국계 미국인 로버트 박(28·한국명 박동훈)씨가 25일 중국을 통해 무단 입북했다고 서울의 북한 인권단체 관계자들이 27일 밝혔다. 대북 인권활동을 벌여온 박씨는 25일 오후 5시 중국 싼허(三合)를 통해 맞은편 북한 땅인 함북 회령시로 들어간 것으로 밝혀졌다. 박씨는 얼어붙은 두만강을 걸어서 넘어가며 한국말로 “나는 미국 시민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왔다”고 외쳤다고 단체 관계자는 전했다. 27일 오후까지 북한 관영 매체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박씨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전달할 영문 편지를 가져갔다. 박씨는 편지에서 “죽어가는 북한 인민들을 살릴 식량·의약품·생필품 등을 가지고 들어갈 수 있도록 국경의 문을 열어 달라”며 “모든 정치범 수용소를 폐쇄시키고 정치범들을 석방해 주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박씨는 북한에 억류되더라도 미국 정부가 구해주기를 원치 않는다는 입장도 밝힌 것으로 파악됐다.

박씨와 연대 활동을 펼쳐온 민간 인권단체 팍스코리아나의 조성래 대표는 이 편지와 함께 박씨 부모가 보내온 글을 공개했다. 박씨의 부모는 “아들이 핍박받는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순수한 편지 하나를 들고 북한에 들어갔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조 대표는 “두 명의 단체 관계자가 중국 쪽에서 로버트 박의 입북 상황을 지켜봤다”며 “강 건너편에 북한 경비병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 체포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또 “당시 촬영한 사진과 동영상을 공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정부 당국자는 “미국 국적인 박씨 문제는 기본적으로 북·미 간 영사문제”라고 말했다. 미 국무부도 “정부는 미 국민의 보호와 안녕을 최우선에 두고 있다”는 원론적 입장만 밝혔다. 그렇지만 스티븐 보즈워스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평양 방문 이후 북·미 사이에 추가 대화가 모색되는 와중에 불거진 돌출 변수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북한의 대응 시나리오는 크게 세 가지인 것 같다. 지난 3월 무단 입북했다 체포된 2명의 미국 여기자 사건처럼 북한이 대미 협상의 카드로 삼을 것이란 관측이 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북·미가 가파르게 대치하던 당시와는 다르다. 그래서 북한이 물밑접촉 등을 통한 원만한 해결을 선택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1996년 한국계 미국인 에반 헌지커의 무단 입북 때는 빌 리처드슨(현 뉴멕시코 주지사) 하원 의원이 방북해 헌지커가 묵었던 호텔비 10만 달러를 내는 것으로 해결했다. 북한은 박씨를 강제 추방할 수도 있다. 인권 운동가 억류가 가져올 수 있는 국제사회의 비판 여론 때문이다.

이영종 기자

◆로버트 박=캘리포니아 출생의 미 시민권자로 북한 인권단체 네트워크인 ‘자유와 생명 2009’의 대표를 맡아 왔다.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대학 졸업 후 멕시코를 거쳐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했다. 1년 전 한국에 들어와 빈민 구호 활동을 벌였으며 7월 ‘한반도 통일’을 계시받았다며 북한 인권활동을 본격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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