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채권 발행, 국회서 발목 잡힌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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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겉으로는 법리 논쟁, 속내는 종교 전쟁.

최근 이슬람 채권 발행을 위한 세법 개정안이 국회 기획재정위에서 제동이 걸린 것에 대한 국회 안팎의 시선이다. 내년 초까지 관련 법 정비를 마치고, 상반기부터 오일 머니를 끌어오기 위한 준비를 해 오던 정부와 금융사·기업들은 뜻하지 않은 상황에 당혹하고 있다.

이슬람 채권(수쿠크)은 이슬람 국가들의 독특한 금융 기법이다. 이슬람 율법(샤리아)에 따라 이자를 받을 수 없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그래서 이슬람 금융은 형식적이나마 실물거래 성격을 갖춘다. 주택 구입비용이 필요하다면 은행이 그 집을 사서 채무자에게 빌려 주고 원리금 대신 사용료를 받는 식이다.

문제는 형식적이라도 실물 거래가 생기면 양도세와 부가가치세·취득세·등록세 등 각종 세금이 붙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이런 세금을 모두 면제해 주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국회에 냈다. 한국외국어대 안수현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달 이슬람 금융 관련 콘퍼런스에서 “세금을 면제해 주지 않으면 금리가 1.5~3.4%포인트 올라가 채권 발행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법안 심사를 진행한 국회 재정위는 “이런 거래를 금융 거래로 볼 수 있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했다. 재정위 조세소위 위원장인 한나라당 이혜훈 의원은 24일 “이슬람 채권에만 세금 특혜를 주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많았다”고 말했다. 소득·법인세율 인하와 임시 투자세액 공제 같은 첨예한 문제가 많으니 2월 임시국회로 넘겨 심의하자는 공감대도 있었다.

하지만 2월 국회에서도 법안 통과가 쉽지 않아 보인다. 법안 처리를 미룬 이면에는 이슬람 자금이 들어오는 것에 대한 기독교계의 반발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소위 위원은 “이슬람 채권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이 테러 자금으로 유입될 수 있다는 주장을 여러 경로로 들었다” 고 말했다.

법 통과를 전제로 이슬람 채권 발행을 위한 실무 준비를 해 오던 금융사 관계자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한 증권사 임원은 “그런 논리라면 기름 값으로 건넨 돈도 테러 자금이 될 수 있다”며 “석유 거래와 공사 수주 등 중동과의 거래가 엄청나게 많다는 점을 무시한 논리”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고민이 더 깊다. 이슬람 채권은 금리가 싸고 사업성 있는 프로젝트에 장기 투자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이번 금융위기를 겪으며 정부는 선진국 은행들이 돈줄을 죌 경우에 대비해 외화 조달 창구를 다변화해야 한다는 점을 절감했다. 오랜 논의 끝에 이슬람 채권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도 그래서다. 재정부 관계자는 “중동 국가는 소수의 지도층이 의사결정을 전담하기 때문에 신뢰가 중요하다”며 “그동안 내년부터 수쿠크 발행을 할 테니 도와 달라는 부탁을 해 왔는데 일이 틀어지면 신뢰에 금이 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강주안·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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