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기획 해외 경제 석학 릴레이 진단 ⑦ 국제통화기금(IMF)의 재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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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제 세계 경제는 비록 순조롭진 않지만 회복의 길로 들어섰고 금융 상황도 상당히 좋아졌다. 그러나 불확실성의 그림자가 여전히 드리워 있고 미처 끝내지 못한 일이 많다.

보다 튼튼하고 안정적인 국제 금융 시스템을 구축하는 작업은 막 시작됐을 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이 경기 회복은 범세계적인 현상이 아니다. 대부분 국가에서 실업률이 치솟고 있다. 국제적 불균형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최빈국들은 매우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다. 이런 이슈들은 세계의 안정과 평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경제 안정은 평화의 기반이고, 평화는 교역과 지속적 경제성장의 전제조건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우리는 위기의 어느 단계에 와 있는 걸까. 정책적 측면에서 보면 시스템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지점에 있다. 위기에 대한 우리의 집단기억이 그 일에 필요한 정치적 의지를 발휘할 수 있을 만큼 생생하기 때문이다. 이런 기회를 낭비해선 안 된다.

그럼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한 국제 경제기구들이 현실을 반영할 수 있도록 개혁돼야 한다. 또한 금융 감독 기구와 규제들을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 두 분야 모두 진전이 있긴 하지만 내년과 그 이후에도 여세를 이어가야 한다.

올해 각국 지도자들은 주요 20개국(G20)을 국제 경제 공조의 주요 창구로 만들기 위해 결단력 있게 움직였다. IMF의 재원을 세 배로 증액했고, IMF의 국가별 지분 중 일부를 신흥국과 개도국으로 이전하는 데 합의했다. 또한 IMF의 도움을 받아 각국이 경제정책에서 상호 평가 시스템을 갖추기로 약속했다. 어떤 나라도 더 이상 독립적으로 경제적 목표를 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내년도 정책 결정의 주안점은 무엇이 돼야 할까. 지난가을 IMF 회원국들은 내년에 IMF가 네 가지 개혁을 실시할 것을 승인했다. 바로 IMF의 임무, 금융기능, 지배구조, 다자적 감시체계에 대한 개혁이다.

우선 IMF 본연의 임무를 재평가할 것이다. 국제 금융질서의 안정과 지속적 경제성장을 촉진한다는 광범위한 목표가 여전히 유효하긴 하다. 하지만 이번 경제위기의 속성인 국제 자본 유출입 및 국경을 초월한 자산 보유의 증가를 고려한다면 IMF의 의무와 그 실행 방식을 재검토할 필요성이 커진다.

둘째, 우리는 회원국들과 긴밀히 협의해 IMF가 금융기능을 수행할 최적의 방안을 찾아야 한다. 많은 나라가 외부의 충격에 대비할 수 있도록 방대한 규모의 외환보유액을 축적해 놓았다. 그러나 이런 식의 자가보험(自家保險)은 국내 통화정책과 환율관리를 복잡하게 만들고, 국내외 자본의 비효율적 배분을 야기한다. 대안(代案)으로 IMF는 ‘신축적 신용 공여(FLC)’ 제도를 도입했다. 회원국들에 선제적인 보험을 제공하자는 차원에서다. 멕시코·폴란드·콜롬비아 등 3개국이 FLC를 이용했는데 아직 개선해야 할 점이 매우 많다.

셋째, IMF는 G20이 합의한 지배구조 혁신 방안을 승인했다. 2011년 1월까지 IMF의 국가별 지분 중 최소 5%를 선진국에서 신흥국과 개도국으로 이전하자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IMF를 좀 더 민주적으로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조치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회원국들은 IMF의 운영에서 좀 더 신뢰할 만한 역할을 갖게 될 것이다. 이렇게 IMF가 보다 합리적인 구조를 갖추면 모든 회원국들이 경제 성장과 안정을 이룩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넷째, IMF는 G20 국가들의 상호 평가를 돕기로 했다. 위에 언급한 국가 지분율의 변화와 새로이 도입되는 G20 국가들의 상호 평가로 인해 마찰이 깊어질 수 있다. IMF의 역할이 필요한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금융 감독과 규제 분야에서 각국 정부는 개별 기관과 국내·국제 차원에서 개혁을 진행해 나가야 한다. IMF는 금융안정위원회(FSB) 및 여타 기구들과 함께 자본·유동성·레버리지·상호연관성 등에 대한 새로운 원칙과 가이드라인을 개발하고 있다. 이 일은 과도한 규제로 시스템에 부담을 지우지 않으려다 보니 어려움이 많다.

우리는 큰 목표를 앞두고 인상적인 출발을 했다. 협력하는 정신으로 공동의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다 보면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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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니크 스트로스칸(Dominique Strauss-Kahn)=프랑스의 경제학자 겸 정치가. 리오넬 조스팽 정부에서 재무장관을 맡았고 국립행정학교(ENA) 교수도 지냈다. 2007년 9월 IMF 총재에 취임했다.